[일 텔레포노] 전화로 풀어낸 Love Story
클들
2014-10-01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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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푼 Love Story
Il Telefono, Opera
루시의 아파트 안. 벤은 루시에게 조각품 하나를 선물로 주고 약속 장소에 갈 생각이었다. 조각품에 관심이 없는 그녀는 건성으로 ‘정말 원하던 물건’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벤이 루시를 향한 마음을 이야기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루시 친구의 전화다.
▲ II Telefono의 한 장면
그녀는 끝도 없는 수다를 늘어놓는다. 수다가 끝난 후 벤이 다시 진지한 얘기를 꺼내려 하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약속 장소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벤이 초조한 모습을 보이자 루시는 전화기를 든다. 정확한 시간을 알아보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벤이 얘기를 꺼내려고 하자 또다시 울리는 전화벨. 이번엔 조지라는 사내가 루시에게 언짢은 말을 늘어놓는다. 루시는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나간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벤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루시는 달려온다. 이번에는 파멜라였다. 조지 때문에 속이 상한 루시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전화에 열중한 나머지 벤이 나간 것도 몰랐던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가 없는 것을 알아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벤의 전화다. 기다리던 청혼의 기회를 잡은 벤은 결국 그토록 증오하던 전화로 청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사랑, 내 전화번호를 기억해 줘, 그리고 매일 매일 전화해 줘.”
어떤 독자는 ‘전화가 오페라의 주인공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어리둥절하겠지만 이 오페라의 얘기는 전화에 중독된 루시(소프라노)와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못해 안달난 벤(바리톤) 사이의 해프닝을 담고 있다.
이 오페라를 처음 본 것은 18년 전 유학을 떠난 첫해 음악원 학생들의 공연에서였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평범한 아파트. 잠옷 가운을 입은 여주인공 루시가 머리에 롤을 꽂은 채 노래하기 시작한다. 초인종이 울리고 비에 흠뻑 젖은 벤이 들어와 두 사람은 포옹한다.
이렇게 시작된 단막의 오페라는 우스운 장면이 끊이질 않았다. 이탈리아 연출자의 아날로그적 창작력은 “오페라는 엄청난 세트 없이도 천재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후 필자는 음악원 졸업연주에서 여주인공 루시의 아리아 ‘헬로, 헬로(Hello, Hello)’를 불렀고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날 필자의 노래를 듣던 관객들의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La Medium’과 같이 공연된 이 작품은 희극 오페라 한편과 비극 오페라 한편을 동시에 올리는 전통을 따랐다. 두 작품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브로드웨이에서 7개월 동안 211번이 공연됐다. 이 성공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메노티는 미국으로 이민 간 후 ‘아멜리아 무도회에 가다’ ‘1937’ ‘노처녀와 도둑’ 등의 작품을 통해 근대 대표적인 미국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를 잡았다.
김현정 체칠리아 성악가(소프라노) sny409@hanmail.net
출처: 더 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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