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들
2015-04-27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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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광염소나타」 - 베토벤, 낭만주의 영웅, 혹은 천재 예술가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광화사」와 함께 그의 탐미주의적인 경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흔히 꼽히는「감자」나 「배따라기」와 같은 작품들과는 또 다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앞선 작품들로만 김동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을, 혹은 충격을 줄 수도 있겠다. 이야기 구조의 완성도나 주제의식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광염소나타」를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김동인의 예술가의 광기나 예술혼에 대한 탐색은 표면적이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소재의 강렬함과 특이함 때문에 20세기 초반 이 땅에서 막 태동하던 근대문학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덕분에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교과서나 각종 참고서에서 이 소설을 읽은 기억이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설의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는 백성수는 천재 작곡가이다 (주인공이 백성수인지, 아니면 실제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화자인 음악 평론가 K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어떤 방향을 취하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전체적인 해석과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기실 그의 천재성은 축복이며 동시에 저주이다. 그는 반인륜적 범죄를 통해서만 세기의 예술을 창조하는 비운의 천재이다. “불이 있던 날 밤마다 저는 한 가지의 음악을 얻었습니다.” 방화사건이 생길 때마다 악보가 탄생하다. 그러나 반복적인 방화는 더 이상 백성수의 예술적 영감을 고취시키지 못한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타락하고, 더욱 광기에 사로잡힌다. 백성수의 아버지 역시 뛰어난 음악가였다. 그러나 광적인 기질 때문에 폭음과 싸움을 일삼다 단명했다. 비평가 K씨는 그를 야성의 음악가로 묘사한다. “광포스런 야성은 때때로 비위에 틀리면 선생을 두들기기가 예사이며 우리 학교 근처의 술집이며 모든 상점 주인들은 그에게 매깨나 안 얻어맞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야성은 그의 음악 속에 풍부히 잠겨 있어서 오히려 그 야성적 힘이 그의 예술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K는 백성수의 아버지를 베토벤에 비유한다. “베토벤 이래로 근대 음악가에서 보지 못하던 광포스런 야성이었습니다.” 동일한 표현을 백성수에게도 K는 적용한다. 백성수는 타고난 광기를 지니고 있다. 백성수는 그의 아버지보다 더욱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 그에게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억누를 수없는 광인의 피가 흐른다. 비록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이지만, 백성수는 오로지 범죄와 사회적 금기의 위반을 통해서만 음악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우발적 방화에서 시작된 그의 범죄는 점점 그 정도가 더해져서,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되고, 그 결과 백성수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백성수를 변론하는 음악 평론가의 K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광염소나타」는 일종의 경고문(disclaimer)으로 시작한다.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십 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그런지나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되는 백성수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짐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나 기무라모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바로 소설가 김동인의 목소리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도입부가 아닐 수 없다. 김동인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공과 설정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는 바로 이러한 모호한 설정 때문에 김동인의 소설은 보다 전략적으로 낭만적 천재라는 19세기 문화·예술 담론에 있어서의 전형적 인간상을 탐사한다. 또한 우리는 김동인이 살던 구한말의 세태가 지금 한국사회와는 또 다른 면에서 다국적 혹은 다문화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다문화나 세계화란 말이 그 당시에는 쓰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더욱 세계화되고, 세계적 보편을 추구하는 역동적인 사고체계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풍토가 조성되었던 부분이 있다.
이 경고문은 동시에 일종의 자기 검열이기도 하다. 김동인은 소설의 배경과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고착화시키지 않고 글을 시작한다.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설 읽기는 허구인 소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혹은 실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작가와 독자가 (무의식적으로) 가장한다는 암묵적 계약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가장의 효과는 독자와 소설속의 인물들과의 동일화에 의해서 극대화된다. 「광염소나타」는 상대적으로 논쟁적인 소재와 주인공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독자의 동일화의 기재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작가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동일화는 양날의 칼과 같다. 소설의 성공을 위해선 동일화의 기재가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 동일화를 유보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종류의 성공, 즉 작품의 독자성 혹은 독립성을 추구한다. 김동인은 사회적 배경 혹은 시대상을 소설이 반영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인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는 시대나 사회에 몰입함으로써 소설이 오히려 스스로의 미학적 가치를 망각한다는 점을 염려했다.
마지막으로 이 경고문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이 이중 액자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자가 있고,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음악 비평가 K가 있다. K를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백성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서 편지라는 형식으로 백성수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분량 상으로 매우 짧은 단편이나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소설은 음악비평가 K씨 그리고 사회교화자 모씨의 대화로 시작한다. 음악 비평가 K라고 하면, 이 나라에서 첫 손가락을 꼽는 음악비평가이다. 그가 백성수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K는 자신이 이야기를 하고, 사회교화자 모씨의 평을 듣고 싶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그러나 사실 사회교화자 모씨의 평가는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대화라는 소설의 구조상 교화자 모씨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의 전개 속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하나,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결코 커다란 기여를 하지 못한다.
천재 작곡가가 음악적 영감을 위해서 방화를 저지른다는 설정,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도 지나친 탐미주의의 모범으로 비추어진다. 김동인은 『조선근대소설고』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선과 미, 이 상반된 양자의 사이에 합치점을 발견하려 하였다. 나는 온갖 것을 ‘미’의 아래 잡아넣으려 하였다. 나의 욕구는 모두 다 미다. 사랑도 미이나 미움도 또한 미이다. 선도 미인 동시에 악도 또한 미다.” 이 진술을 얼마나 표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동인의 「광염소나타」가 이러한 예술관과 궤적을 함께 하고 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천재라는 단어의 기원이나, 예술사에서 천재적 재능에 대해선 다양한 기원이 있다. 유종호를 비롯해서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광염소나타」에서 드러나는 천재 예술가에 대한 상은 18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관의 일환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 예술가는 기존의 도제적 수련 혹은 교육과 대조되어 순간적 영감에 의지하는 예술가이다. 음악비평가 K는 백성수에게 말한다. “자네게는 그러한 교육이 필요가 없어. 마음대로 나오는 대로 하게. 자네 같은 사람에게 계통적 훈련이 들어가면 자네의 음악은 기계화해버리고 말아. 마음대로 온갖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천재는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어떤 특정한 규칙도 주어질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천재의 재능이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 낸다. 천재의 창조물은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 내고, 이 새로운 규칙은 타인들의 모범이 된다. 그렇기에 천재성은 독창적이지만 또한 모범적, 범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칸트는 천재는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산출되었는가를 명백하게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천재는 스스로가 의식해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초감각적인 자연 혹은 신을 통해서 얻은 영감을 통해서 작품을 창조한다. 백성수는 기존의 음악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새로운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 낸다. 동시에 스스로가 자신의 재능을 의식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오로지 광기라는 얼굴의 영감을 통해서만 작품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전형적인 칸트적 의미의 천재 예술가이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예술관에 도취된 사람은 예술가 스스로가 아니라, 작품 속의 음악비평가 K와 같은 예술가의 주변인이라는 점이다. 비평가 K는 예술지상주의자이다. “방황? 살인? 변변치 않은 집개, 변변치 않은 사람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K의 논리에 따르자면 비록 백성수가 극단적 범죄 행위를 저지른 건 분명하지만, 백성수의 천재적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그러한 범죄 행위는 용납될 수 있다. 도대체 어떠한 천재적 음악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인가. K가 생각했을 때, 오늘날의 음악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베토벤 이후로 음악이라 하는 것이 차차 힘이 빠져 가서 꽃이나 계집이나 찬미할 줄 알고 연애나 칭송할 줄 알아서 선이 굵은 것은 볼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엄정한 작곡법이 있어서 그것은 마치 수학의 방정식과 같이 작곡에 대한 온갖 자유스런 경지를 제한해 놓았으니깐 이후에 생겨나는 음악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전에는 한 기술이 될 것이지 예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에는 이것이 쓸쓸해요. 힘있는 예술, 선이 굵은 예술, 야성으로 충일된 예술.” K가 보기에 오늘날의 음악은 일종의 형식주의의 덫에 빠져있다. 그의 입장에서 오늘날의 음악에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창안할 수 있는 힘, 야성이 결여되어 있고, 기존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창조해 내는 백성수의 음악이야 말로, 새로운 희망이요 창조력의 분출구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평론가 K는 베토벤을 종종 광기의 천재 예술가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실상 베토벤은 광기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표적 음악가이다. 몇몇 최근 연구들은 베토벤이 조울증을 겪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베토벤이 조울증을 겪었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는 끝없는 논쟁으로 남아 있다.)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창조력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큰 관심분야였다. 모든 조울증을 앓는 사람이 예술가가 될 일은 당연히 없지만, 예술가들이 조울증과 같은 상태에 있을 확률은 일반인들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조울증은 기본적으로 심리상태의 급격한 변화이다. 울증은 우리를 보다 더 완벽주의자가 되게 하고, 반대로 조증은 보다 야심찬 태도를 가지게 한다. 이러한 심적 상태가 평온한 정서상태보다 보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기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고,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조울증이 창조력을 발휘하는데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베토벤을 비롯해서, 슈만, 바그너, 모차르트 등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일종의 정신병적 증상을 드러낸 것은 사실이고, 일부는 진단이 가능할 만큼 현저한 증상을 보였지만 정신병과 이들의 음악적 창조력 혹은 천재성과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베토벤의 독특한 성격과 음악적 천재성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상상력을 종종 사로잡았다. 베토벤과 같은 천재 음악가 상은 20세기 들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의 아드리안 레버퀸에 의해서 결정화된다. 이 소설은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와 마찬가지로 천재 작곡가를 다루고 있다. 동일하게 액자 소설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재해석인데, 위대한 재능을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 불행한 영혼. 그가 바로 천재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낭만주의 천재상은 앞서 토마스 만의 예에서 보듯이 일종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달리 말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예술가 상은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같은 소설들 속에서 탄생했고, 그 속에서 유지되었다. 마찬가지로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광포한 천재, 미친 천재 예술가라는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김동인의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이자 개신교 교회의 장로였던 김대윤이었다. 김동인은 아직 청년이라고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많은 유산을 상속 받았다. 그는 19세에의 나이에 문학지 『창조』를 일본 유학 중 주요한, 전영택 등과 함께 발간했다. 그때가 1919년이었다. 그의 예술지상주의, 혹은 탐미주의는 분명 그의 아버지의 재산이라는 물적 조건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물적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고집했다. 김동인이「광염소나타」를 집필할 때, 이미 가세는 기울었고, 원고료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갔다고 전해진다. 말년에는 우울증과 중풍에 시달렸고, 한국 전쟁 중에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탐미주의 소설가의 최후로서는 별로 나빠 보이지 않는다.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 역시 급격한 변혁과 혁명의 시기였다. 그에겐 나폴레옹이 있었고, 프랑스 대혁명이 있었다. 또한 우울증과 귀먹음이 있었다. 여러 여인들을 사랑했으나 결코 한 여인을 사랑하지는 못했고,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 떠돌이 인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그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베토벤과 김동인은 각자의 상이한 방식으로 낭만주의의 영웅을 그려냈다. 김동인에게 「광염소나타」와 「광화사」가 있다면, 베토벤에는 발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가 있고, 교향곡 3번과 5번이 있다. 그들은 모두 비범한 인간의 영웅적 품성을 동경했다. 그리고 역시나 각각 자신들의 영웅에 상응하는 삶의 족적을 그들의 역사에 기록했다.
_ 글, 김영훈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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