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5번 Symphony No. 5 in C sharp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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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1860 ~ 1911) 이(가) 1901년에 작곡한 작품입니다.

작품 주요 정보

  • 장르 교향곡
  • 작품형식 Symphony
  • 작곡년도 1901 ~ 1902
  • 출판년도 1904
  • 개정년도 1904
  • 초연날짜 1904-10-18
  • 초연 아티스트 구스타프 말러
  • 초연장소 Cologne, Germany
  • 평균연주시간 1:08:37
  • 레이팅
  • 악기편성 4 flutes (3, 4 also piccolo), 3 oboes (3 also English horn), 3 clarinets (3 also bass clarinet, piccolo clarinet), 3 bassoons (3 also contrabassoon) 6 horns (F), 4 trumpets (B♭, F), 3 trombones, tuba timpani, snare drums, bass drum, holzklapper, cymbals, triangle, tam-tam, whip glockenspiel, harp, st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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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파트 (5)

  • 듣기 예약   1. Trauermarsch. In gemessenem Schritt. Streng. Wie ein Kondukt

  • 듣기 예약   2. Stürmisch bewegt. Mit größter Vehemenz

  • 듣기 예약   3. Scherzo. Kräftig, nicht zu schnell

  • 듣기 예약   4. Adagietto. Sehr langsam

  • 듣기 예약   5. Rondo-Finale. Allegro


작품해설

웅대한 자연 시(詩)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죽음과 부활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해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한 4번, 앞의 네 곡은 분명 젊은 사람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모습은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하지만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더욱 단단히 압축된,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은 순수한 기악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말러의 5번은 앞의 네 곡에서 보여준 방황의 결산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방황과 고뇌는 아직 끝나기에는 멀었으니, 훗날 9, 10번에서 말러는 다시 삶에의 집착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5번은 그가 걸어간 길이 한복판에 가장 견고하게 서 있는, 그의 인생의 표적과 같은 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외적인 표제를 붙인 일이 없다. 말러는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 가극장의 감독으로 4년째 알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괴짜',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벗고 작곡가로서도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아름답고 총명한 알마 쉰틀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한 이 곡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적나라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20세의 젊은 알마에게 결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이다.

 

제 1 부

 

1악장 Trauermarsch

 

'장송 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어린 시절 듣던 군대 나팔 소리의 추억에서 끌어낸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한다. 처절한 장송곡의 리듬과 격렬하고 사나운 절망과 슬픔의 기나긴 패시지가 교차한다. 변형된 행진곡 멜로디를 플루트가 연주하는 끝 부분은 귀기(鬼氣)를 느끼게 한다. 말러가 진정한 천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가만 보면 말러가 교향곡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형식들을 새롭게 자신에 고에 활용하고 있다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것은 100년 전 베토벤이 이미 응용한 것이다. 베토벤은 이미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하였고(말러는 이 비교를 싫어하였다), 느리고 빠른 변주곡을 사용하였고, 푸가 패시지를 집어넣었고, 장송 행진곡을 사용하였다.

 

이런 방법들은 말러의 곡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송 행진'에서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의 행진'이란 것은 말러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번 교향곡의 시작이 그렇고, 3번 교향곡의 첫 악장에서도 장송 행진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1번 교향곡의 3악장은 물론, 심지어 가곡에도('북치기 소년'이라든지, '기상 나팔'이라든지) 죽음의 행진곡을 집어넣는 작곡가는 없을 것 같다.

 

말러의 다섯 번째 교향곡도 바로 이 죽음의 행진으로 시작된다. 첫 머리에 등장하는 트럼펫의 군대 풍 팡파르는 말러에게 전형적인 것이다. 장례 행진을 사용하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팡파르로(그것도 어두운) 교향곡을 시작하다니, 자주 들으니까 익숙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어쨌든 말러는 이 주제의 셋잇단음 리듬이 언제나 속도를 붙여서 연주되기를(정말 군대의 팡파르처럼) 악보에서 지시하고 있다.

 

2악장 StürmIsch bewegt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격렬하게.'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고뇌가 더욱 사납게 물결친다. 음악적 갈등이 심화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극적인 반전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지평이 열리곤 하는데 이 기법을 '개파(durchbruchsform)'라고 한다. 분노의 테마에서 평화의 테마로 반전이 일어나는 대목의 '개파'는 이 곡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전곡의 클라이맥스는 2악장 종반에 펼쳐지는 금관의 찬란한 코랄이라고 할 수 있다. 얼어붙은 하늘을 뚫고 한순간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말러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찬란한 대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유령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다시 눌려버리고 만다.

 

말러의 5번 교향곡에서는 엉뚱하게도 첫 악장이 아니라 두 번째 악장이 선명한 소나타 형식(스터디 스코어의 첫 번째 에디션에서는 제시부에 반복 지시까지 있었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말러는 자필 악보에 이 악장은 '주 악장(Hauptsatz)'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 악장은 앞의 악장과의 연계가 분명해서 트럼펫 팡파르의 셋잇단음 리듬이 악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제2주제는 앞 악장의 두 번째 트리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물론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에 등장하지 않는 점도 몇 가지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재현부 마지막에 D 장조 코랄이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화가 나서 투쟁하고 있는 듯한 곡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것으로서 긍정적인 분위기의 마지막 악장을 예고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악장은 또한 1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자주 비교된다. 격렬한 '지옥' 주제에서부터 '천국' 주제로 전개되어 가고, 악장 지시도 '폭풍같이'인 것이다. 성격이 음험한 많은 말러리안들이 이 악장에 사로잡혀 잇는데, 파울 베커에 따르면 심지어 이 악장이 '열정의 분출하는 힘과 내용의 강렬함이 담긴 것으로, 교향적 예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2 부

 

3악장 Scherzo. Kräftig, nicht zu schnelll

 

스케르쪼. 말러가 "삶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 sumus)"라고 표현했듯이, 삶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상념을 뿌리치지 못하는 말러의 이중성을 들려준다.

 

호른 협주곡이라고 불릴 만큼 호른 독주가 곡 전체에서 활약하며 말러의 교향곡에서 빠뜨릴 수 없는 렌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 무곡)도 등장한다. 말러의 스케르쪼 중에서는 드물게 아이러니나 패러디 등의 비뚤어진 심성이 없다. 점점 피날레의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 3 부

 

4악장 Adagietto. Sehr langsam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인 이 곡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와서 유명해진 부분이다. 관악기들은 쉬고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이다. 폭풍 사이에 환상처럼 잠시 맛보는 평화라고 할까? 하지만 싸늘한 햇살 속에서 꾸는 피곤한 꿈처럼 쉽게 깰 것만 같은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다.

 

12분 정도 연주되는 결코 짧지 않은 이 음악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시거나 진정한 평화를 찾고 싶으실 때 정말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음악에 몰입하신 후 문득,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 드시면 바로 그제서야  이 아름다운 말러 교향곡 4악장의 연주가 끝났음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음악을 감상하시면 마치 밤사이, 세상사람 아무도 몰래 내린 눈이 천지를 온통 깨끗하고 하얗게 뒤덮은 아침 고요하게 눈 앞에 펼쳐 져 있는, 순결처럼 빛나는 백색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싸늘한 겨울 아침, 온통 하얗게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가에서 명상에 잠기 듯 그 고요함에 동화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Full Orchestra의 연주를 기본으로한 교항곡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이 4악장은 관악기를 모두 쉬게한 채,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이 아름다운 악장은 분명히 말러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이 곡이 루키노 비소콘티의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더라도(정말이지 시종일관 이 음악이 흐른다) 이 곡은 누군가에 의해 유명해졌을 것이다. 알마 말러가 이 곡의 주제이자 목적지인데, 이 에피소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빌렘 멩겔베르크이다. 그는 악보의 여백에다 '이 아다지에토는 구스타프 말러의 사랑의 고백이다. 말러는 편지 대신 이 곡의 원고를 보냈고, 알마는 말러에게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써넣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이 이야기를 멩겔베르크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알마 말러 역시 뛰어난 작곡가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고, 멩겔베르크는 이 에피소드를 알고 잇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남의 연애 이야기에 대한 지식의 과시는 가히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심지어 악보의 다른 빈곳에는 '나의 태양,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잇는지'로 시작되는 시까지 적고 있다. 말러 수집가(?) 혹은 학자인 길버트 카플란이 늘 이 곡은 죽어 가는 슬픔이 아니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서이다. 

 

많은 지휘자들이 이 곡을 10분이 넘는 길이로 연주하는 반면 카플란은 발터와 함께 7분대에서 마무리하고 있고, 아바도는 이 보다는 조금 길지만 9분대에서 연주한다. 다행히 말러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롤이 발견되어서 카플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잇는데, 이 피아노 롤을 들으면서 카플란은 벅찬 가슴을 안고 감동에 못 이겨 말했을 것 같다.

 

5악장 Rondo-Finale

 

피날레. 여러 가지 점에서 1악장 장송 행진곡과 대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5악장에 이르면 1악장의 행진곡에 표현된 고통과 슬픔은 떠들썩한 기쁨의 함성으로 반박되는 것이다. 2악장에서 잠시 연주되었던 금간 코랄은 여기서 진정한 환희의 합창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나 5악장은 지나치게 가볍고 들떠있어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5악장의 기쁨을 단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곡은 서주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중간에 상당히 많은 푸가 패시지가 삽입되어 있다. 말러가 그토록 공부한 바흐의 다성음악은 이 곡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푸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 악장인 것이다. 이 악장에 대한 학자의 의견은 대체로 양분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페흐트나 파울 베커 등의 좀 오래된 세대들은 '삶의 의지', '힘을 향한 의지', '지상의 삶에 대한 찬가' 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 아도르노를 선두로 한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아도르노는 "말러는 형편없는 예스맨이다. 그의 목소리는, 니체가 가치를 주장할 때, 그 자신이 이 '극복한다'는 역겨운 개념을 연습할 때처럼, 깨뜨려진다.  그는 마치 즐거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양분된 해석에 공통된 것은 결국 이 곡이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긍정적인 악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D 장조 코랄은 밝은 빛 속에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사실 생애에서 거의 유일하게 흠 없이 행복한 순간에 있었던 말러였기에 이런 곡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러가 브루크너와 가끔 비교되지만, 이 두 작곡가가 완전히 다른 점은 바로 이 코랄에서 나타난다. 두 작곡가 모두 교향곡에서 즐겨 코랄을 사용했지만 브루크너는 한번도 이 곡에서 쓰인 것과 같은 경박한(?) 코랄을 쓰지 않았다. 말러와는 달리 그에게 음악은 종교와도 같이 성스러운 것이었는지 그는 언제나 교회 코랄만을 사용한 것이다.

 

 

 

출처 : 상상의 라이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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