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커트너 Solomon Cu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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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피아니스트. 활약한 시기가 길지 않고, 뇌경색에 의해 경력을 중단한 것으로부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런던의 이스트 엔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세부터 클라라 슈만의 제자 마틸데 베르네에게 사사한다. 1912년 10세에 데뷔를 장식했다. 이때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이며, 지휘는 헨리 우드였다. 그 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으로 런던에서 데뷔했다. 이 콘서트의 성공으로 '신동 솔로몬'라고 소개된 이후 '솔로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성이 아닌 이름만으로 활동한 경우는 클래식계에서 매우 드물다.

  영국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연주 활동을 중단할 것을 결심한다. 그는 파리로 건너가 마르셀 뒤플과 라자르 레비에게 배웠다. 라자르 레비는 클라라 하스킬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 후 19세의 나이에 연주 활동을 재개, 1929년에는 첫 녹음을 실시한다.

  솔로몬은 고전파에서 낭만파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높인 것은 무엇보다 베토벤의 연주였다. 솔로몬은 뛰어난 기교와 암보 능력을 기초로 한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기반으로 격조높고 고전미를 구축하는 연주로 알려졌다. 고국 영국을 중심으로 구미에서는 위대한 베토벤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솔로몬은 EMI와 계약을 맺고, 1951년부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에 임했다. 하지만 1956년 여름 뇌졸중에 의해 왼손의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게 되어,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최종 악장에서는 손가락이 미끄러 일부가 누락 수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은퇴하고 소나타 전집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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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39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블리스(Arthur Bliss)의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
1946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수훈함
1956 뇌졸중으로 오른쪽 팔이 마비되어 은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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