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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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라피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지휘자. 본명은 블러우 예뇌(Blau Jenő).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부터 바이올린의 재능을 드러냈다. 1905년 부다페스트 왕립 음악원에 입학. 2008년부터 명 바이올리니스트 예뇌 후버이(명 연주자 요제프 요아힘의 제자)에게 사사, 1917년에 바이올린 교수의 자격을 얻고 음악원 졸업 후, 바이올리니스트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스승의 후임으로 왕립 음악원 바이올린과 주임 교수로 취임한다. 그러나 1921년 미국 연주여행 때 무일푼으로 낯선 땅에 내던져지는 고초를 겪는다. 일설에는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했다고도 한다.

  생계를 위해 1921년 뉴욕 캐피톨 극장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지만, 실력을 인정 받고 같은 해에 콘서트마스터로 취임, 1923년부터 몇 년 동안 바이올리니스트로 약간의 솔로 녹음을 했다. 1924년 9월 지휘자가 갑자기 쓰러져 대역으로서 캐피톨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어 지휘자 데뷔, 이후 지휘자로 전향했고 1926년 캐피톨 극장 부지휘자. 1927년 미국 국적을 취득, 같은 해 캐피톨 극장을 나와 CBS 라디오 방송 콘서트 지휘자가 된다.

  1931년 와병 중이었던 토스카니니의 대역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정기공연을 지휘. 이 대연을 성공시켜 명성을 높여 같은 해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 (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 1936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함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공동 지휘자가 된다.

  1938년 스토코프스키의 사임에 따라 후임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 무일푼으로 내던져진 미국에서 일류 지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어메리칸 드림 실현하게 되었다. 이후 음악감독으로 1980년에 은퇴할 때까지 42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재임했다. 후임 선정에도 직접 관여하여 리카르도 무티를 지명했다. 필라델피아 튜브를 이끌고 유럽, 소비에트, 중국, 호주 등으로 연주 여행을 하고, 일본 공연도 4차례 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의 사임 후 악단에서 계관지휘자의 칭호를 주어 계속 연주 · 녹음을 했다. 1985년 3월에 별세, 1984년 1월 필라델피아 튜브와 연주회가 생애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그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현을 중심으로 뽑아내는 그 음색은 '필라델피아 사운드', '오먼디 톤'으로 이름을 떨치고 특히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연주에 큰 힘을 발휘했다. (오먼디 자신은 '필라델피아 사운드'라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오먼디 톤'이라고 불러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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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27 미국으로 귀화함.
1936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부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1980년까지 44년간 재임하며 수많은 레코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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