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리히터 Karl R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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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리히터는 1926년 독일 동부의 작센 지역에 있는 플라우엔에서 태어났다. 드레스덴의 성 십자가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의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독일 종교음악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교회음악의 성지’ 라이프치히에서 귄터 라민, 카를 슈트라우베, 루돌프 마우어스베르거 이렇게 세 명의 위대한 칸토르를 사사한 경력은 그로 하여금 종교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리히터의 뛰어난 재능을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에 바흐가 음악감독이자 교육자로 활동했던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받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이렇듯 바흐가 숨 쉬던 곳의 공기를 호흡하며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하는 기초를 다지게 된다.

  1951년 리히터는 삶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베를린에서 취리히를 거쳐 서독의 뮌헨으로 이주하여 음악원에서 오르간을 가르쳤고 귄터 라민의 추천으로 성 마가 교회에서 칸토르를 맡았다. 동시에 그가 평생의 과업으로 삼게 된 바흐의 음악을 더욱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펼치기 시작했다. 바흐의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뮌헨 바흐 합창단을 창설하고 같은 목적으로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를 조직한 것이다. 교회 성가대에서 전적으로 독립되어 종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패셔널한 합창단과 악단의 창설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리히터와 그가 이끄는 단원들은 커다란 호응을 받으며 성장해 나아갔다. 염격한 훈련과 절제된 표현으로 바흐 음악 해석의 신경지를 개척한 리히터는 많은 공연과 녹음을 통해 단원들과 함께 놀라운 성과를 일구어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 한창의 나이인 54세에 뮌헨의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여 많은 애호가의 애도를 받았다. 1981년 5월 3일에 열린 그의 추모 콘서트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봉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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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49 토마스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됨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과거 바흐가 봉직했던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1954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지휘자가 됨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1981년 별세할 때까지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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