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샤브리에 Emmanuel Chab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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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태생의 작곡가로 소품에 뛰어난 것이 많고, 자유로운 표현과 그로부터 태어나는 신선한 유머에 독자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나 1856년 파리에 나가 법률을 배우고, 이윽고 내무성에 근무하여 관리 생활에 들어갔다. 음악 공부는 그 후도 계속되어 작곡을 스메(T. E. Semet)와 이냐르(A. Hignard)에게, 피아노를 볼프(오스트리아)(E. Wolff)에게 배우는 한편 댕디, 뒤파르크(Henri Duparc, 1848~1933), 포레(프랑스) 등의 음악가와 화가 마네, 시인 베를렌 등과도 친하게 교제하면서 새로운 예술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 동안에 작품도 몇 개를 완성했는데, 1877년(36세)의 오페레타 「별 L’étoile」과 1879년(38세)의 「교육 부족 Une éducation manquée」이 호평을 받았으므로, 이듬해 1880년에 내무성을 그만두고 작곡가로서 자립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해에 스페인을 여행하고 그 인상을 바탕으로 랩소디 「스페인」(관현악곡)을 완성했는데, 1883년 라무뢰(Lamoureux)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어 그 밝은 리듬과 민족적인 색채는 그를 일약 유명하게 했다. 당시 프랑스의 음악계는 바그너(독일)의 강한 영향에 있었는데, 샤브리에(프랑스)도 한때 바그너(독일)에게 경도하고 1884년~1885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오페라)의 파리 상연에 노력했다. 

 

그러나 1886년(45세)에는 독자의 본격적 오페라 「그벤돌린 Gwendoline」을 발표하고 이어 1887년에는 「억지 임금 Le roi malgré lui」을 작곡해서 점점 명성을 높였다. 그 밖에 알려진 작품으로는 피아노곡 「하바네라 Habanera」(1885), 「변덕스런 부레 Bourrée fantasque」(1891) 등이 있는데, 그의 밝고 남구적인 작풍을 잘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마누엘 샤브리에 [Alexis Emmanuel Chabrier] (최신명곡해설, 클래식명곡해설, 2012.5.31,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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