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코르토 Alfred Cort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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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부모로부터 스위스에서 태어났으며, 피아노 교육은 파리 국립음악원의 디에메 밑에서 배웠으며, 1896년 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즉시 악단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바그너에게 너무 매료된 나머지 1898년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연주활동을 중지하고 바이로이트로 달려가, 바이로이트 축전 극장의 부지휘자가 되어 바그너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1902년에는 《신들의 황혼》을 스스로 지휘하여 파리 초연을 행하는 외에, 각종 작품을 취급함으로써 바그너의 선양(宣揚)에 힘을 다하였다. 물론 그동안에도 피아노의 활동을 잊어버리는 일 없이 유럽과 미국을 돌아다니며 연주하였다. 1905년에는 바이올린의 티보, 첼로의 카잘스 등과 함께 유명한 3중주단을 조직하였다. 이것은 그 후 약 20년간 계속되었다. 1919년, 기울기 시작한 국립 음악원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새바람을 불어 넣기 위하여 친구인 티보와 함께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를 설립하였다. 이것으로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 프랑스 음악계의 융성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스에게 협력하게 되었고, 그 후 추방되어 스위스에서 만년을 보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그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정신을 프랑스에 주입함으로써 20세기 전반의 프랑스 피아노계에 음악의 외면적 효과보다도 내면의 주관성을 보다 중시할 것을 극력 주장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쇼팽, 슈만, 프랑크, 드뷔시의 곡에서 독특한 해석과 표현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독일적 정신의 프랑스화(化)"에 의거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템포의 움직임, 리듬의 자유스러움, 내용의 성숙함, 색채의 농담, 격심한 명암 등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그의 연주에서의 최대의 특색이다. 명연주는 쇼팽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를 제외한 그 밖의 거의 모든 작품, 슈만의 대부분의 작품, 드뷔시의 <전주곡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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