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뮌슈 Charles M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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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령이었던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훗날 프랑스로 귀화한 지휘자이다.

오르간 합창 지휘자의 에른스트 뮌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족 중에 음악가가 많아 삼촌 오이겐 뮌흐, 사촌 동생인 한스 뮌흐, 형 프리츠 뮌흐는 모두 지휘자이다. 또한 샤를의 누나 엠마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동생 폴 슈바이처와 결혼했다.

집은 독일계 알자스인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 알자스가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을 때 일단은 독일 국적을 선택하지만, 훗날 나치의 대두를 싫어하여 프랑스에 귀화하여 프랑스식 이름으로 고쳤다. 출생 이름의 철자는 Charles Münch에서 1940년대 초부터 움라우트를 빼고 Munch로 적게 됐다는 통설도 있지만, 실제로는 1940년대에 움라우트를 붙이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 등 일정하지 않고, 1946년 서명에서도 움라우트를 붙이고 있던 것이 지적되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1926년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되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1932년까지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와 발터 아래에서 콘서트마스터를 맡았다. 게반트하우스에서는 독일어로 카를 뮌흐(Carl Münch)라고 했다.

1929년에 파리에서 지휘자로 데뷔, 1937년에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1946년까지 재임했다. 1949년에 보스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 1962년까지 그 자리에 있으며 수많은 연주를 했다. 1960년에 보스턴 교향악단, 1966년에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을 맡았다. 1967년에 파리 관현악단이 창단되어 초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듬해 동 악단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던 중 미국의 리치먼드에서 급서했다.

뮌슈는 긴 지휘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는 열정적인 지휘동작과 폭발적이고 열기 넘치는 음악적 표현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또한 즉흥의 명수이고 많은 연습을 싫어하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리허설을 했다고 해도 공연 중 악마같은 미소를 띄우면서 연습 때와는 전혀 다른 지시를 내리는 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생애의 거의 절반씩을 각각 독일인과 프랑스인으로 보낸 그는 양국의 음악에 모두 능했다. 오랜 콤비였던 보스턴 교향악단과의 연주를 RCA 레이블에서, 말년의 파리 오케스트라와 녹음이 EMI 레이블에서 많이 남아있다. 특히 후자의,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의 레코드 CD는 평가가 높다. 또한 오자와 세이지와 샤를 뒤투아를 가르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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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11-01 파리에서 41세라는 늦은 나이에 지휘자로 데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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