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몽퇴 Pierre Mont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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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독학으로 비올라를 배웠다. 재학중인 1892년(17세) 제로소 현악 4중주단의 비올라 주자, 1893년에 콜론느 관현악단의 수석 비올라 주자(후에 부지휘자가 됨)가 되었고, 1900년에는 디에프의 그랜드 카지노 극장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마스터 겸 부지휘자(후에 음악감독이 됨)가 되어 장기간에 걸쳐 활약하였다. 그러나 1911년 러시아 발레단의 디아길레프의 초청으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시카》를 초연하여 성공함으로써 1917년까지 이 발레단의 지휘자로서 전념하게 되었다. 이 동안에 그에 의해서 초연된 명작으로는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1912),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13), 드뷔시의 《유희》등이 있다. 1917년부터 1919년까지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지휘자로서 《카르멘》, 《파우스트》등 프랑스 작품을 수많이 상연했고, 1919년부터 1924년까지 보스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후 프랑스로 돌아가 디아길레프와의 공동생활이나 콘세르트헤보우 객연 등을 계속했다. 1929년에는 전해에 결성된 파리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1938년에는 몽퇴 지휘자 학교를 설립했는데, 젊은 지휘자 양성을 위한 갖가지 활동을 만년까지 계속했다. 1935년에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초빙되어 이듬해 1월에 취임하여 1952년까지 재임했으며, 1937년 11월에는 NBC교향악단의 제1회 공개 연주회의 지휘도 했다. 그 후 자유의 몸이 되어 빈 필하모니나 콘세르트헤보우 등을 비롯하여 구미 각지의 오케스트라에 객연하다가 1961년부터 런던 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었고, 콘세르트헤보우,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이스라엘 필하모니에의 객연 등 노령을 모르는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64년 4월 이탈리아 RAI에의 객연 후 건강을 해쳐 런던 교향악단의 연습을 마지막으로 미국 메인 주의 자택으로 돌아와 생애를 마쳤다. 몽퇴의 지휘는 얼핏 보아 아무런 꾸밈도 없이 그저 지휘봉만 흔들고 있으면 저절로 음악이 되어 나온다는 그런 느낌을 받으며, 더구나 거기에는 그의 따뜻한 애정이 잔잔히 넘치고 있으며, 우아하기 이를데 없다.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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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13-05-29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초연 1913년 5월 29일,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안무로 발레 <봄의 제전> 초연 지휘. 청중들의 반발과 난동으로 파행으로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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