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클렘페러 Otto Klemp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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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라피

  오토 클렘페러는 독일 블레슬라우(현재는 폴란드 영토)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지휘 시절은 브루노 발터와 유사하게 구스타프 말러와 강하게 연계되어 있다. 1905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공연의 오프스테이지 금관 밴드를 지휘한 것을 계기로 그는 선배 지휘자와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1907년 말러의 추천으로 프라하의 독일 오페라극장에서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경력을 이어나갈 때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만(Elisabeth Schumann)과의 불륜으로 인해 퇴출되고, 스트라스부르, 쾰른, 비스바덴에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독일 음악의 수호자라는 꼬장꼬장한 선입견과는 달리 힌데미트 <카르디악>, 야나체크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 쇤베르크 <기대>, 스트라빈스키 <오이디푸스 왕> 등 동시대의 작품을 무대에 곧잘 올렸다. 독일에서 나치가 득세하자 유대인이었던 클렘페러는 미국의 로스 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미국 생활은 사실상 실패에 가까웠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에 복귀하여 부다페스트 오페라에서 지휘봉을 잡으며 객원지휘를 했지만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클렘페러의 인생에서 대전환점은 1954년 EMI의 명 프로듀서 월터 레그(Walter Legge)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녹음을 맡긴 데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그의 높은 명성은 이 시기가 아니었으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클렘페러의 음반은 주로 영국 악단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연주가 많고 정통 교향악에 편중되어 있다. 젊은 시절에는 동시대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나 디스코그래피는 지극히 보수적이다. 그의 연주와 해석은 세련미와 거리가 멀고 악기들의 소리는 매우 투박하다.

  만년에는 청각을 비롯하여 몸이 현저하게 쇠약해져 1972년 1월에 공개 연주활동에서 은퇴를 선언, 같은 해 말에는 레코딩 활동도 은퇴했다. 이듬해 스위스 취리히의 자택에서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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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08-09-19 말러 교향곡 7번 초연에 말러의 조수 겸 부지휘자로 참여
1933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함 나치가 집권하자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8 화재로 화상을 입음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자다가 침대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었다.
1959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취임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 상임지휘자에 취임하여 1973년까지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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