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텐슈테트 Klaus Tennst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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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동독 영내의 라이프치히의 서독 30km, 할레의 남쪽 15km 지점에 있는 메르제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이론을 배웠다.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1948년부터 할레 주립극장의 관현악단에 바이올린 주자로서 입단하였다. 그 동안 지휘법을 공부하여 지휘자로 전향하였고, 1952년 이 극장의 악장이 되었다. 
그 후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54년부터 1957년까지는 카를막스슈다트 극장의 제1악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는 라데보일 주립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활동했으며, 1962년에는 슈벨린 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도 취임하였다. 이러한 활동외에 동독 내의 많은 극장과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도 했다. 
그러나 1971년 동독을 나와 스웨덴으로 옮기고 예테보리의 스톨라 극장과 스톡홀름의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에서 지휘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1972년에는 킬 오페라 극장의 음악 총감독이 되었다. 1974년 처음으로 캐나다와 미국에 진출해 토론토교향악단과 보스턴 교향악단 등의 객원 지휘를 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런던에 데뷔하였다. 그 이래 런던 필하모니 와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텐슈테트는 슈미트 이셰르슈테트의 정성스런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가 죽은 다음에는 모셰 아츠몬이 지휘자로 있던 함부르크의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고, 또한 미네소타 관현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이 밖에 베를린 필하모니,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 등에서도 종종 객원 지휘를 하였다. 또 1983년 가을부터 솔티의 후임으로 런던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오페라나 연주회에서도 그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있으며 브리튼, 헨체, 야나체크의 작품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독일, 오스트리아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는데, 특히 말러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고 그런 만큼 말러의 연주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1980년에는 전년도에 있어서의 말러의 가장 뛰어난 연주를 실현시킨 지휘자라는 것으로 빈의 말러 협회에서 표창을 받았다. 텐슈테트는 말러 이외에도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바그너 등을 좋아했다. 
그의 음악은 격정을 과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서정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섬세하게 신경을 쓰는 치밀함과 정리가 잘 된 성실한 연주가 특징이며, 더욱이 그중에서 극적인 긴장감과 서정성과의 밸런스가 멋지게 조화되고 있다. 런던 필하모니를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제1번, 제3번, 제5번](모두 Angel)의 레코드가 텐슈테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 명지휘자 사전,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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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48 할레 시립 오페라극장에서 콘서트마스터를 맡음 할레 시립 오페라극장에서 콘서트마스터를 맡았다. 그러나 곧 손 부상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중단하고 지휘로 전향했다.
1971 스웨덴으로 망명
1983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여 1987년 물러날 때까지 재임했다.
1985 후두암 진단받아 방사선치료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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