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RIAS 심포니 오케스트라 Berlin RIAS Symphony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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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역할 연주단체 (Orchestra)
  • 활동시기 Clas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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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군 점령지에 방송국이 설립되었는데, 미국 관할 구역이었기 때문에 'Rundfunks im amerikanischen Sektor/Radio in American Sector' 라는 이름이 붙었고 각 머릿글자를 따서 'RIAS' 라는 약칭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함부르크 등지에서 점령군 산하 방송국 소속의 관현악단을 조직하기 시작하면서 베를린에도 방송 관현악단의 창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1946년 11월에 '베를린 RIAS 교향악단' 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첫 공연은 이듬해 9월 7일에 개최되었으며, 처음 몇 년 동안은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 체제로 운영되었다. 1948년에 헝가리 출신 지휘자인 페렌츠 프리차이가 초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으며, 프리차이는 악단의 본업인 방송 출연 외에도 정기적인 연주회를 영화관인 티타니아 팔라스트에서 개최하면서 악단의 연주력 향상과 제3제국 시대에 금지되었던 레퍼토리들의 부활 공연에 힘썼다.

 

1953년에 미군 당국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해단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악단 체제와 방송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RIAS로부터 독립했다. 상임 지휘자는 프리차이가 그대로 유임했고, RIAS 외에 1954년 6월에 영국군 점령지의 북서독일 방송국 베를린 지국을 기반으로 개국한 자유 베를린 방송(Sender Freies Berlin, SFB)과도 계약을 맺고 방송 출연을 시작했다. 1956년에는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으로 개칭되었고, 1950년대 후반부터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 관현악 작품의 연주에도 주력했다.

 

프리차이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 활동 때문에 1954년에 사임했으나, 1959년에 다시 복귀해 활동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부터 지병이었던 백혈병이 악화되면서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1963년에 타계하고 말았다. 악단은 이듬해 미국 출신 지휘자인 로린 마젤을 후임으로 지명했고, 마젤은 1975년에 겸무 중이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할 때까지 재임했다. 마젤 사임 후에는 에리히 라인스도르프를 비롯해 오이겐 요훔, 게르트 알브레히트,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네빌 매리너 등의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출연했다.

 

1977년에 베를린 시 당국과 자유 베를린 방송, RIAS 세 개 기관이 악단을 공동 운영하기로 합의했고, 1982년에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인 리카르도 샤이가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샤이 이후에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켄트 나가노가 차례로 직책을 이어받았고, 2007년에 창단 이래 첫 독일인 상임 지휘자로 잉고 메츠마허가 취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1990년 동서독의 통일 후 동베를린 지역에서 활동하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과 이름의 경합이 문제가 되면서 악단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1993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최종 개칭되었다. 이듬해에는 방송 관현악단과 합창단 주식회사가 발족해 방송국 소속에서 공식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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