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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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의 여류 피아니스트. 일찍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수많은 준재를 키운 명교사 스카라무차에게 배웠다. 8세 때에 남미의 대표적인 연주회장인 콜론 극장에서 모짜르 의 협주곡 제20번과 베토벤의 협주곡 제1번을 쳐서 데뷔를 장식하여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1955년 외교관이던 부친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스위스에서 니키타 마갈로프와 리파티 부인에게 사사하고, 또 빈에서 프리드리히 굴다의 가르침을 받은 뒤, 폴란드 출신의 스테판 아스케나제나 이탈리아의 명인 미켈란젤리에게도 사사했다. 이 사이에 이미 1956년부터 유럽 각지에서 연주회를 열고, 이듬해 1957년에는 이탈리아의 보르차노에서 열린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또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도 폴리니(제2위)를 누르고 우승하여, 널리 유럽악단의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듬해 1960년에는 이 젊은 재능의 장래를 재빨리 인정한 독일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어 레코딩을 하였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아르헤리치의 이름이 일약 세계적으로 클로즈업된 것은, 1965년의 제 7 회 쇼팽 콩쿠르에 우승과 (동시에 '마주르카 상'도 수상)했을 때부터로, 유럽 각지에서 연주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이듬해 1966년에는 미국에서도 데뷔하고, 또 1967년에는 에든버러 음악제에 출연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가져, 항상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여성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터치, 다이내믹한 표현, 풍부한 음을 가진 그녀의 연주는 또한 남다른 예민한 감각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그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단순히 그것에만 크치지 않고, 항상 샘솟는 듯한 음악에의 감흥과 정열을 수반한 것에 아르헤리치의 남다른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특질은 쇼팽과 리스트를 중심으로 한 낭만파로부터 근대 작품에 있어서 특히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근년은 그 분방한 정열에 작품에 대한 보다 원숙하며 지적인 어프로치를 가해서, 한층 부드럽고 내면적인 깊이를 더한 잘 연마된 표현을 들려 주게 되었다. 또 실내악에 있어서도 타고난 날카로운 감각을 발휘하여, 뛰어난 녹음을 남기고 있다.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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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 이벤트 (2)

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57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 콩쿠르 우승
1965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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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 포고렐리치

    '아르헤리치' 이(가) 스승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이었던 아르헤리치는 포고렐리치가 탈락하자 반발하여 대회장에서 퇴장하였다.

  • 스티븐 코바세비치

    '아르헤리치' 이(가) 배우자

    전(前)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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