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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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보

  • 주요역할 작곡
  • 국가 Italy
  • 성별 남자
  • 출생/결성 1858-12-22 Lucca, Italy
  • 사망/해체 1924-11-29 Brussels, Belgium
  • 활동시기 Post-Romantic

바이오그라피

루카 태생인 이탈리아의 가극 작곡가. 부친은 루카에서 명성이 있는 음악가였으나, 그가 5세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모친과 누이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으나, 특별한 재능은 인정받지 못했고, 학교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10세 때쯤 교회의 합창단에 들어가, 부친의 문하생이던 안젤로니의 열성적인 지도와 모친의 격려를 받아 음악적 재능이 싹터서, 16세 때 오르간 콩쿠르에서 1등상을 획득했으며, 이 때부터 교회의 오르간이나 결혼식 피로연, 무도회 등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 공부를 했다. 1880년에 이탈리아 여왕이 하사한 연금을 타게 되어 숙원이던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여, 퐁키엘리와 밧찌니에게 사사했다. 또 마스카니와 같은 하숙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고, 1883년에 졸업 작곡으로서 쓴 《교향적 기상곡》은 훗날의 《라 보엠》의 선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스승 퐁키엘리의 권유로 가극의 작곡에 손을 대어, 제1작 《빌리》를 밀라노의 극장에서 초연했으며. 그 뒤 라 스칼라 극장에서도 상연했다.

 

제2작은 《에드가》인데, 1873년에 발표한 제3작 《마농 레스코》에 이르러 비로소 대성공을 거두어 푸치니의 개성이 확립되었다. 이것에 계속되는 《라 보엠》은 가난한 예술가의 생활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그린 가극으로, 다음 2작과 함께 푸치니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어서 1900년에 《토스카》가 상연되고, 1904년에는 일본을 제재로 한 《나비 부인》이 상연되었다. 그 뒤 골드 러시 시대의 미국을 다룬 《서부의 아가씨》, 오페레타풍의 《제비》, 희가극 3부작 《외투》, 《수녀 안젤리카》, 《지안니 스키키》를 썼으나, 최고의 작품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완성으로 끝난 최후의 《투란도트》는 동양을 제재로 한 야심적인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극적 효과에 넘치는 가극이다. 푸치니의 가극의 제재는 만인의 가슴을 치는 인정미가 풍부한 것이 많으며, 그 음악은 극히 아름답고 극적 효과를 고조하는 데 뛰어나 있다. 또 음악적으로는 이탈리아 가극의 전통과 격식을 갖고 우아하고 풍부한 선율을 마음껏 표현하게 했는데, 그 감정의 묘를 극도로 다한 아리아의 아름다움은 푸치니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탈리아 가극계의 왕자로 군림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두에 걸쳐 활약한 베르디 이후의 이탈리아 최대의 가극 작곡가로 손꼽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아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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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868 성가대원이 됨 성 마르티노 대성당과 성 미켈레 인 포로 성당의 성가대원이 됨
1872 오르간 연주자가 됨 성 마르티노 대성당과 성 미켈레 인 포로 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됨
1875 작곡을 처음 시도함
1877 오페라 작곡가에 뜻을 둠 피사에서 관람한 '아이다'에 감동을 받고 오페라 작곡가에 뜻을 둠
1880 밀라노 음악원 입학 폰키엘리에게 작곡을 사사받음
1883 밀라노 음악원 졸업
1885 엘비라 제미냐니와 깊은 관계에 빠짐
1904 엘비라와의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됨 엘비라의 전 남편이 사망하여 두 사람의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됨
1924 후두암으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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