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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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라피

라트비아 (당시 소련에 속함) 출신의 첼로 연주자. 라트비아어 이름은 Miša Maiskis (미샤 마이스키스).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중 한 명이다. 같은 리가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마이스키의 1년 선배여서 크레머가 주재 로켄하우스 음악제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의 협연을 비롯해 실내악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레퍼토리는 폭넓어서 첼로 용으로 쓰여진 작품 외에도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을 첼로로 연주하는 시도도 있다.

1948년, 리가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가정에서 8세부터 첼로를 시작한다. 리가 음악원을 거쳐 1962년에 레닌그라드 음악원 부속 음악학교에 입학. 마이스키는 소년 시절부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1965년 17세의 나이에 전 소련 음악콩쿠르 우승. 같은 해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교향악단과 협주곡을 연주하여 데뷔한다.

1966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6위 입상. 이 때 심사위원이었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 재능을 인정받아 모스크바의 집에 초청 받아 지도를 받게된다.

1969년 누이가 이스라엘에 망명한 관계로 마이스키의 가족은 소련 당국의 감시하에 놓이게 된다.

1970년, 마이스키는 체포되어 고리키 교외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18개월간 수감된다.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도 별장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숨겨주고, 소련 당국에 의해 연주 활동을 중지당한다. 출소 후에도 병역을 명령받은 마이스키는 유대인 상담 의사가 마이스키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으로 병역을 회피했다고 한다.

1972년 해외 이주가 인정되어 11월에 출국, 도미한다.

1973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동년 카사도 음악콩쿠르 우승.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공연 후 초대된 익명의 노신사 집에서 연주한 마이스키는 신사에게서 1720년에 제작된 몬타냐나 첼로를 기증받았다. 마이스키는 현재도 이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1974년, 로스트로포비치가 "퍄티고르스키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절대 놓치지 말라"라고 했던 말을 지키고, 그레고리 퍄티고르스키의 마지막 제자가 된다.

1975년, 프랑스의 방스 음악제에서 아르헤리치와 알게 되어, 이후 두 사람은 음악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수많은 공연과 녹음을 함께 한다.

1984년에서 1985년에 걸쳐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구반)의 녹음이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발매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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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65 전소련 음악콩쿠르 우승 17세의 나이로 전소련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같은 해 레닌드라드 필과 협연하여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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