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닐센 Carl Niel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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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뇌레 린델세 주 (Nørre Lyndelse) 소르텔룽(Sortelung)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군악대의 트럼펫 주자가 되면서부터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코펜하겐 음악원의 가데에게서 작곡법을 배우고, 작곡가·지휘자로서 활약했다. 북유럽 음악가 중에서는 그리그 이후의 대표적 작곡가이다. 그는 작곡을 할 때 다조성을 쓰는 등, 혁신적인 수법을 썼다. 대표작은 여섯 개의 교향곡으로 된 코믹 오페라 〈마스케라드〉, 〈다윗과 사울〉등이다.

 

Nielsen의 생애

<이화여대 논문 서정하(2012) Carl Nielsen의 Concerto for Flute and Orchestra를 통해 살펴본 Nielsen의 작품 경향 연구>

 

 

칼 닐슨은 1865년 6월 9일 덴마크의 핀(Fyn) 섬의 주도 오덴스1)로부터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노르-린델스(Nørre-Lyndelse)에서 페인트 공이자 마을 음악가였던 아버지 닐스 요르겐슨(Niels Jørgensen)과 어머니 마렌 키르스틴 요르겐슨(Maren Kirstine Jørgensen) 사이에서 7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은 겨우 방이 2개뿐 인 오두막집으로 그 집에서 19년 동안 12명의 형제가 태어나 자랐다. Nielsen이라는 성은 덴마크의 오랜 관습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Nielse의 아들이란 뜻이 된다. 
칼 닐슨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지만 그의 양친 모두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페인트 공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바이올린과 코넷 연주에 뛰어났고 어머니는 노래에 소질이 있었다. 이런 부모의 음악적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닐슨은 네 살 때 땔 나무 감을 두드려 음정을 찾아내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며 놀았고 6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바이올린 연주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로부터 2,3년 뒤 그는 마을악단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연주하면서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위한 폴카를 작곡했고 이 무렵 그는 아버지로부터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4살이 되었을 때 그 보다 나이가 많은 경쟁자들을 재치고 오덴스 군악대의 트럼펫 주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연주 경험이 그의 첫 공식 음악 교육인 셈이다. 군악대에서 음악적 소양을 쌓던 닐슨은 1882-3년 그의 첫 번째 실내악 곡인 ‘Quartet No.1.'을 군악대의 동료 음악가를 위해 작곡했다. 이 작품은 비엔나 고전 악파의 것을 모방한 습작으로 이 시기에 그는 이러한 실내악곡을 여럿 작곡했다. 1883년 5월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코펜하겐으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는 당시 덴마크 음악원(Conservatorium)의 원장이자 낭만주의 작곡가로 이름 높았던 Niels W. Gade2)를 찾아가 그의 첫 현악4중주를 선보였고 이를 살펴본 Gade는 형식미를 잘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며 만약 바이올린도 연주할 수 있다면 음악원에 충분히 입학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그 해 12월 오디션을 본 Nielsen은 1884년 새해에 장학생으로 음악원에 들어갔다.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북유럽과 그리스 신화, 괴테와 플라톤, 셰익스피어와 홀베르그 등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애독서는 플라톤의 ‘국가’였는데 그는 평생 이 책을 곁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3년 뒤 음악원을 졸업하고도 작곡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던 닐슨은 음악 이론가인 Orla Rosenhoff 밑에 남기로 했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진정한 첫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현악4중주 G 단조(1888), 후에 op.13.이 되는 곡이다. 같은 해 그는 G 장조 현악5중주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소 조곡(Little Suite)」을 썼다. 이 Little Suite는 닐슨의 곡 중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된 곡으로 1888년 9월 8일 티볼리 홀에서 성공적으로 연주되었다. 1889년에 그는 Kongelige Kapel(Royal Chapel) Orchestra의 제 2바이올린 주자로 뽑혀 16년간의 오케스트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케스트라 주자로서 활발히 연주여행을 다니던 중 그는 파리에서 덴마크 출신 조각가 안느 마리 브로데센(Anne Marie Brodersen)을 만나는데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1달이 가기도 전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결혼하고 코펜하겐에 정착했다. 

 1890년 그는 첫 피아노 작품에 착수해서 5개의 피아노 소품을 쓰고, 1891년에는 첫 성악곡을 작곡한다. 그리고 1892년 드디어 1번 교향곡을 완성한다. 이 곡은 1894년 3월 14일 요한 스벤슨(Johan Svendsen)3)의 지휘로 왕실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초연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1895년에는 첫 바이올린 소나타가 완성 되
었다. 닐슨은 오케스트라 주자로서도 작곡가로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해지지는 않았다. 1893년 1월 7일 지휘 데뷔를 계기로 그는 덴마크 극작가 Holger Drachmann의 연극 Snefrid의 음악 작곡을 의뢰받았지만 이 극은 1899년까지 공연되지 않았고 그 후에도 겨우 몇 차례 무대에 올려 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기 닐슨은 바그너의 오페라「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러 간 빈에서 평소 존경하던 브람스를 만났고 브람스로부터 1번 교향곡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후 오페라를 쓸 결심을 하게 된 닐슨은 첫 번째 오페라의 대본으로 구약성서의 사울과 다비드 이야기를 선택하여 작곡에 착수했다. 그의 첫 오페라「사울과 다비드(Saul og David)」는 1902년 11월 28일 왕립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12월 1일에는 그의 2번 교향곡이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2번 교향곡에는 “4개의 성
질(The Four Temperaments)”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표제음악에 우호적이지 않던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 이 제목은 곡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성격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닐슨은 그의 저서『Living Music』에서 ‘표제(program) 또는 제목은 곡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어야지 구
체적 사건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 고 역설하고 있다. 2번 교향곡이 완성된 시기부터, 닐슨은 덴마크 음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덴마크 작가의 요하네스 요르겐슨(Johannes Jørgensen)의 가사에 곡을 붙인 새로운 성악곡「Søvnen (The Sleep)」을 작곡했다. 또한 이 시기 그는 16년간 몸담았던 오케스트라의 제2 바이올린 연주자 생활을 접고 작곡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이 때 시작한 작품이 루드비히 홀베르그(Ludvig Holberg)의 작품을 토대로 한 3막의 오페라 부파「가면무도회(Maskarade)」이다. 이 작품은 1906년 11월 11일 초연된 이래 덴마크의 국민 오페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1931년 10월 닐슨이 죽음을 맞이할 때도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극장에서 이 오페라가 상연되고 있었다고 한다.「사울과 다비드」와「가면무도회」는 닐슨의 오페라 음악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곡이며 이를 통해 작곡가 자신도 명성을 얻어 왕립 극장의 지휘자로 초빙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닐슨은 작곡에는 누구보다 눈부신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휘자로 입문한 초기에는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작품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원활히 지휘하기 까지는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왕립 극장의 지휘자로 안정기를 맞은 1910-11년, 닐슨은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덴마크 이외의 지역에 알리게 된 두 곡인 교향곡 3번 Sinfonia Espansiva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3번 교향곡은 비평가들로부터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듬인데 이제 덴마크 교향곡에도 리듬이 들어왔다’고 평가 받을 만큼 혁신적인 곡으로 여겨졌고 작곡가 본인도 3악장을 ‘심장 박동’이라 묘사할 정도로 리듬이 강조된 작품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교향곡 5번으로 이어져 1악장은 천둥이 몰아치는 듯한 스네어 드럼이 곡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5번 교향곡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혁신을 이룬 작품으로 닐슨은 이 곡을 통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독창적 작곡 기풍을 완성 하였다. 6번 교향곡이자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Sinfonia Semplice는 1924년 8월에 시작해서 60세 되던 해인 1925년 12월에 완성되는데 이 곡은 그가 오래 몸담았던 Royal Chapel Orchestra에 헌정되었다.  60세 이후에도 그의 창작 활동은 끊일 줄 몰랐다. 목관악기 곡의 작곡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그의 주요 목관 작품인 목관 5중주와 플루트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이 모두 이 시기에 쓰여 졌다. 이 밖에도 그는 평생을 통해 덴마크어로 쓰여 진 성악곡을 다수 작곡해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과도한 연주스케줄과 작곡 작업으로 인한 과로로 얻은 지병인 협심증은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혔다. 결국 1931년 9월26일 그의 오페라「가면무도회」를 지휘하던 중 몸에 이상을 느낀 닐슨은 2막 중간에 연주를 포기해야 했고, 이틀 후 병원에 입원한 뒤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0월 1일, 자신의 지휘로 연주 될 계획이었던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를 병상에서 라디오로 들은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은 칼 닐슨은 그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10월 3일 왕립 극장에서「가면무도회」가 연주되고 있는 시각,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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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871 바이올린을 배움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움
1879 군악대 입대 군악대에서 호른과 트럼펫을 연주함
1884 코페하겐 음악원 입학
1886 코펜하겐 음악원 졸업
1887 첫 작품이 공개 연주됨
1889 왕립악단에 바이올린 주자로 입단
1890 독일여행 장학금을 받고 바그너를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여행함
1891 결혼 조각가인 안네 마리 브로데르센과 결혼
1905 왕립악단 사임 왕립악단 사임. 작곡에 전념함
1908 왕립극장 악장에 취임
1914 왕립극장 악장 사임
1915 코펜하겐 음악원 이사에 취임 코펜하겐 음악원 이사에 취임. 음악협회에서 지휘활동을 계속함
1916 코펜하겐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침
1926 협심증으로 발작을 일으킴
1931 코펜하겐 음악원 원장이 됨 코펜하겐 음악원 원장이 됨. 10월 3일 심장병으로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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