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메트너 Nikolai Med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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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보

  • 주요역할 지휘
  • 국가 Russia
  • 성별 남자
  • 출생/결성 1880-01-05 Moscow, Russia
  • 사망/해체 1951-11-13 London, England
  • 활동시기 20th Century

바이오그라피

러시아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작품번호로 60개가 넘는 곡집과 번호 없는 약간의 작품을 남겼다. 피아노 독주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 가곡, 피아노 중주곡, 3곡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다. 그 중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 14곡, 바이올린 소나타 3곡, 보컬과 피아노를 위한 보칼리제 1곡이다.

양친의 조상은 독일계로, 개신교를 믿는 사업가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조상은 18세기에 러시아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머니의 사촌은 역시 작곡가였던 알렉산드르 게티케이다.

아내 안나는 문예비평가였다. 1919년 메트너와 결혼, 남편이 죽은 뒤 1958년에는 메트너의 자필 악보를 들고 소련에 귀국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 세르게이 타네예프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900년에 우수상을 수상하여 졸업 후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스승 타네예프의 권유로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09년에는 모교의 피아노과 교수를 맡았다가 이듬해 사임, 1914년에 복직했다. 1916년에는 작곡을 글린카상을 수상했다.

전도유망한 시점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였다. 한동안 소련에 머물렀지만, 곧 친구였던 라흐마니노프처럼 연주 여행 명목으로 출국했다. 망명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1927년 이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25년 파리에 정착했지만, 프랑스 6인조와 스트라빈스키가 주도권을 가졌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음악계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 런던에 정착했다. 만년에 러시아인으로서의 자의식에 눈을 떠 정교회로 개종했다.

만년에는 많은 지지자가 나타났다. 마이소르 왕국(현 인도 카르나타카) 마지막 번왕 자야 챠마 라자 워디얄(1919~1974)가 메트너의 작품을 애호하고 '메트너 협회'를 설립, 그 기금으로 그라모폰이 메트너의 연주를 녹음했다.

1951년 11월 13일 런던에서 별세, 런던 시내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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