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르티농 Jean Marti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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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보

  • 주요역할 지휘
  • 국가 France
  • 성별 남자
  • 출생/결성 1910-01-10 Lyons, France
  • 사망/해체 1976-03-01 Paris, France
  • 활동시기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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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리용 태생. 리용의 음악원을 거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한편 작곡을 루셀에게, 지휘를 로제 데조르미에르와 샤를 뮌시에게 사사했다. 졸업후 한동안은 작곡에 뜻을 두어 작곡활동을 했다. 이 분야에서의 그의 재능은 제2차대전 중의 수용소 시절의 작품 《수인(囚人)의 노래》(1945년 파리 시 대상 수상), 48년의 현악 4중주곡(바르토크상)을 비롯하여 제3교향곡(53년)이나 시카코 교향악단 75주년 기념을 위한 제4교향곡(65년) 등의 작품을 낳았다. 지휘자로서의 활동은 전후부터 시작되어 주로 외국에서 실적을 올린 뒤에 51년에는 라무뢰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57년까지 재임했다. 58년부터 59년까지 이스라엘 필하모니의 음악감독으로 있었고, 59년부터는 뒤셀도르프 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되었다. 그동안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에 객연을 계속하여 57년에는 보스턴 교향악단이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도 객연했다. 60년에 시카코의 라비니아 음악제에 데뷔하여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하였고, 62년에도 이 악단을 객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63년에는 퇴임한 프리츠 라이너의 뒤를 이어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초빙되었으나 이 악단과는 뜻이 맞지 않아 69년에 사임하고 말았다. 그 후로는 파리로 돌아와 상임지휘자로 있는 프랑스 국립 방송관현악단(ORTF)과 충실한 활동을 전개하여 스승 뮌시나 클뤼탕스가 죽고 없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로서 주목을 끌었다. 이것은 그의 최후의, 그리고 가장 화려한 시기였다. 74년에 이 악단이 개조되어 프랑스 국립관현악단이 되자 그 지위를 첼리비다케에게 물려주고, 네덜란드의 헤이그 레지덴티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겼으나, 2년 후에 겨우 원숙기에 접어든 66세의 나이로 아깝게도 파리에서 타계했다.

 

프랑스의 정통적 지휘자의 한 사람인 마르티농은 시카코 교향악단의 시절에는 헝가리 출신의 라이너, 숄티 사이에 끼어 그의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으로 오자 일전하여 고기가 물을 얻은 듯한 활약상을 보였다. 그의 생애를 이 7년 동안에 응축하여 연소한 셈이다. 뮌시, 클뤼탕스 등 프랑스의 명지휘자들은 웬지 그 최성기에 급서하여 애석하기 짝이 없는데, 마르티농의 프랑스 음악은 극히 세련된 연주 속에 그의 지적으로 세련된 감각과 따스한 휴머니즘이 깃들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마르티농 [Jean, Martinon]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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