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쿠벨리크 Rafael Kubelí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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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의 비호리에서 태어났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얀 쿠벨리크가 바로 그의 부친이었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 등을 공부했다. 
1934년 체코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콘서트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36년에는 체코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취임하였고, 1938년에는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과 그 밖의 나라에 연주 여행을 하였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에는 브르노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를 맡았고, 1939년에는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를 통해 오페라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이어서 체코에서는 처음으로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을 전곡 상연하였다. 
그 후 다시 체코 필하모니의 지위에 복귀했지만, 1948년에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글라인드본 오페라 극장에서의 [돈 조반니]를 지휘하게 된 것을 기회로 공산주의화한 체코를 탈출하여 런던에 망명한 다음 스위스에서 국적을 얻었다. 그 사이 1949년에는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여 1953년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로이 해리스의 [교향곡 제7번](1952)과 블로흐의 [헤브루 모음곡](1953) 등을 초연하였는데, 레퍼토리가 좁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되자 음악감독을 사임하고 말았다. 
쿠벨리크는 1954년에 영국의 새들러즈 웰즈 오페라단에서 야나체크의 [카차 카바노바]를 지휘하여 크게 성공을 하였고, 또 그 성과와 수완을 인정받아 1955년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쿠벨리크는 여기서 1956년에 야나체크의 [예누파], 1957년에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을 각각 런던에서 초연하였다. 그리고 그는 오페라를 영어로 노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자국어에 의한 훌륭한 상연을 할 수 있는 국립 오페라 그룹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자세는 분명히 주목을 끌었지만 코벤트가든은 이에 대해 극히 소극적이었고, 쿠벨리크는 이 지위에 1958년까지 재임하였다. 그 사이에 연주회 지휘자로서 국제 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빈 필하모니, 이스라엘 필하모니와 그 밖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또 레코딩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는 1961년 요훔의 후임으로서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였다. 이 지위는 분명히 다망하였지만, 방송국이나 오케스트라측에서의 이해가 있었고 하여 쿠벨리크는 하고 싶은 곡목이나 대곡을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었다. 또 연주회도 활발히 열었으며, 레코드 녹음에도 의욕을 보였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외국 연주 여행도 몇 번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1971년에 음악 감독제를 만들고 그 초대 감독으로 쿠벨리크를 영입하였다. 그는 [트로이인]으로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하였지만 1974년 2월에는 이 지위를 사임하고,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에서 번스타인의 후임으로서 음악 감독에의 요청도 있었지만 이것도 1년간이었고 오래가지 않았다. 
쿠벨리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작곡도 하였는데, 작품에는 오페라, 합창곡(레퀴엠), 교향곡 그 밖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지휘 활동에 의해 스톡홀름과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되었고, 국제 말러 협회에서 금으로 된 말러 메달을, 이탈리아 브루크너 협회로부터는 이탈리아 브루크너 메달을 받았다. 
그는 레퍼토리가 좁다는 평을 받은 일이 있었지만,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으로 옮기고 나서는 오히려 넓은 레퍼토리를 보여주었다. 또한 적극적으로 대작을 취급하고 선곡이나 인사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상당히 강경하게 주장한 일 등으로, 방송국측과의 관계가 한때 험악하게 되어서 그 음악 감독의 지위를 사임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꾸밈이 없고 적당히 독일적인 중후함이나 구축성을 보이면서도 극적인 긴장감도 잊지 않는다. 쿠벨리크 자신은 이러한 극적인 면을 가진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레코드는 야나체크의 [글라골 미사곡](그라모폰)을 들고 싶은데, 장대한 효과가 감동적이다. 오페라 방면에서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전곡(그라모폰)이 뛰어났는데, 여기서는 역시 드라마의 긴장감 설정에 능숙하며 또 가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세계 명지휘자 사전,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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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42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됨 불과 28세의 나이에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6년간 재임했다.
1946 '프라하의 봄 음악제' 창설 매년 스메타나의 기일(5월 12일)에 열리는 '프라하의 봄 음악제'(Prague Spring Festival)를 창설했다.
1950 시카고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임명됨
1961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상임지휘자가 되어 1979년까지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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