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in Dvořá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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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라호제베스 태생인 보히미아(체코)의 작곡가. 여인숙과 정육점을 경영하는 가난한 가정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6세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마을의 악대나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9세 때에 오르간 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하여, 이윽고 선배인 스메타나에게 발견되어 그가 지휘하는 체코 국민 가극장 관현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있으면서, 10년 동안 작곡 공부를 계속했다. 32세 때에는 프라하의 훌륭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많은 학생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작풍은 처음에 독일 음악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특히 바그너의 감화는 강했다. 또 그를 인정하여 세상에 소개한 것은 브람스였다. 그러나 이윽고 보히미아의 민족적 색채가 강한 경향으로 전향하여, 가극에서는 왕성하게 국민적 제재를 사용했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스타바트 마테르》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 곡을 지휘하기 위해서 1884년에 영국으로 초대되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뒤도 여러 차례 영국으로 건너갔다. 1891년에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으나, 그 이듬해 초빙되어 뉴욕의 국민 음악원의 원장으로 3년간 재직했다. 이 사이에 작곡한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그의 최대 걸작이 되었다. 이 곡은 흑인의 민족 음악과 보히미아의 향토 음악을 결합시킨 명곡으로, 이 밖에도 흑인의 민요의 특색을 살린 현악 4 중주곡 (작품 96)과 5 중주곡(작품 97)도 작곡했다. 귀국 후 1901년부터는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으로 취임했으며, 문하생으로는 수크와 노바크가 나왔다. 그는 스메타나의 유산을 이어받고, 이 나라의 국민 음악을 세계적으로 육성시켰는데, 독일 음악, 특히 브람스의 영향을 받아 대규모적인 순음악을 많이 작곡하여 보히미아 국민주의 최대의 작곡가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토닌 드보르작 [Antonin, Dvořák]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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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848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함
1857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
1858 성 체칠리아 교회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가 됨
1859 오르간 학교 졸업 오르간 학교를 졸업함. 콤작악단의 비올라 주자가 됨
1862 체코 가극장의 비올라 주자가 됨
1873 성 아달베르트 교회 오르간 주자가 됨
1890 명예박사를 받음 프라하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수여받음. 체코 예술아카데미회원을 선출됨
1891 프라하 음악원 교수가 됨
1901 프라하 음악원장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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