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 도라티 Antal Doráti

대표이미지

아티스트 사진

기타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아티스트 정보

바이오그라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의 음악원과 빈 대학을 졸업하였다. 
지휘자로서의 데뷔는 1924년 18세 때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 활동한 다음, 1928년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에 프리츠 부슈의 부지휘자가 되었고, 다음해인 1929년에 뮌스터 시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그 이후 독일 각지에서 객원 지휘를 했으나 나치스에게 쫓겨나 결국 영국에 건너가게 되었다. 1935년 몬테카를로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가 되었는데, 도라티가 당시 편곡한 발레 <졸업 기념 무도회>(원곡은 J.슈트라우스에 의함)는 특히 유명하다. 이 발레단과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도라티는 일전하여 콘서트 지휘자가 되었는데, 1945년에 미국의 댈러스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후 몇 년 안되어 일류 악단으로 키워서 그 수완이 인정되었다. 1949년 미트로풀로스의 후임으로서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현재 미네소타 교향악단)에 초청되었는데, 같은 헝가리 출신의 선배인 라이너, 셀, 오먼디와 어깨를 겨루는 인기 지휘자가 되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는 BBC 교향악단, 1966년부터 1973년까지는 스톡홀름 필하모니, 1970년에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 1975년 이후는 런던의 로열 필하모니, 1979년부터는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수석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은퇴 하였는데, 종신 명예 지휘자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오페라 지휘자 또는 발레 지휘자로서의 경험은 도라티의 연주 양식의 기초를 구축하게 하였다. 이를테면 활기찬 리드믹한 움직임이나 클라이맥스를 향해 직선적으로 밀어붙여 나가는 쾌적하기까지 한 운동성, 또 풍부한 가요성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특징은 발레 음악에서 현저하게 나타나 있고, 특히 미니애폴리스 시기에 머큐리에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여러 작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연주였다. 또 당시는 이른바 하이파이 녹음의 전성기였는데 차이콥스키의 서곡 <1812년>에서는 진짜 대포를 등장시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도라티는 헝가리의 망명 음악가들(헝가리 국립 필하모니,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 부다페스트 방송관현악단의 멤버)로 구성된 필하모니아 홍가리카(1957년 빈에서 조직되어 그 후 본거지를 서독의 마르 시로 옮겼다)와 하이든 교향곡 전집(로빈즈 랜던의 교열 악보에 의함)이라는 대규모의 녹음을 완성시켰다. 거기에는 즉물적인 녹음 체계나, 음의 합리적인 구성을 중요시하였고, 다이내믹한 표현 속에서도 완숙한 맛을 살리고 있다.

세계 명지휘자 사전, 삼호뮤직

관련 사이트


주요 아티스트로 참여한 앨범 (44)


앨범 모두 보기   연주별 상세 모두보기

관련 사건 / 이벤트 (1)

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24 지휘자 데뷔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관련 아티스트 (7)


이 아티스트에 대한 생각 (0)

댓글을 갖고 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