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로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

대표이미지

아티스트 사진

기타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아티스트 정보

바이오그라피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9살 때 파르마 왕립음악원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하고, 1885년 순회 가극단의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오페라단 첼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였는데, 1886년 리우데자네이루 가극장의 첼로 연주자였을 때, 《아이다》를 대신 지휘하여 지휘자의 대타로 잠시 지휘봉을 잡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휘자가 되었다. 토리노 오페라 극장, 파르마 오페라 극장 등을 거쳐 30대의 나이로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 '밀라노 라 스칼라'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 극장에 있으면서 토스카니니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음악회의 악습과 페단을 모두 철폐하는 개혁을 하는 한편, 공연의 질을 높이고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열성을 쏟았다. 특히 작곡가 푸치니와의 오랜 친구 사이로 《투란도트》를 비롯한 그의 많은 걸작들을 초연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도 있으면서 엔리코 카루소, 안토니오 스코티, 넬리 멜바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공연을 하였으며, 1930년대에 들어서는 파시스트 정권이 이탈리아에 들어서며 토스카니니는 무솔리니와 대립하게 된다.

공연을 보러 온 베니토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 찬가를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결국 무솔리니가 고집을 꺾었다는 일화도 있다.

파쇼로부터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미국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NBC는 1937년에 그를 위해 각 악기들의 비르투오소들만 모인 올스타 오케스트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일반 연주회는 물론, 라디오와 TV를 통한 폭넓은 방송공연까지도 하였다. 토스카니니는 NBC 심포니와 정열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던 중 1954년 여름의 공연에서 가벼운 실신을 일으키고 은퇴하였다. 이후 그 해 10월에 레코딩 녹음을 끝낸 후 공식 활동을 그만두었다.

1957년 1월 16일 만 89세로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임종 직전 그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갑자기 허공에 지휘를 하기도 했다 한다.

 

관련 사이트


주요 아티스트로 참여한 앨범 (117)


앨범 모두 보기   연주별 상세 모두보기

관련 사건 / 이벤트 (6)

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886-06-30 극적인 지휘자 데뷔 로시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였던 토스카니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투어에서 <아이다> 공연을 하던 중, 기존 지휘자가 크게 여유를 받자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즉석에서 지휘자로 추천되어 지휘 후 환호를 받았다.
1898 라 스칼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가 됨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가 되어 1908년까지 재직했다.
1908 메트로폴리단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취임
1926-04-25 푸치니 <투란도트> 초연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 <투란도트> 초연을 지휘했다. 푸치니가 작곡을 중단한 부분에서 연주를 멈추고 청중을 향해 "거장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숨을 거두었다."라고 말했다.
1931-05-14 파시즘 찬가 '조비네차'(Giovinezza) 연주를 거부. 파시즘 찬가 '조비네차'(Giovinezza) 연주를 거부하여 무솔리니 정권의 탄압으로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37-12-25 NBC 교향악단의 첫 연주 미국으로 이주한 토스카니니는 NBC 교향악단을 결성하여 첫 연주를 했다. 이후 1954년까지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관련 아티스트 (6)


이 아티스트에 대한 생각 (0)

댓글을 갖고 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