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레온하르트 Gustav Leonh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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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의 쳄발로 및 오르간 주자.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쳄발로의 레슨을 받고, 15세 무렵에는 이미 쳄발로와, 네덜란드에 풍부하게 남아 있는 옛날 오르간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1947년부터 1950년에 걸쳐서 스위스의 바젤 스콜라 칸토룸에서 명수 에두아르트 뮐러에게 오르간과 쳄발로를 사사하고, 졸업한 뒤 빈에서 데뷔하여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하여 1952년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빈 국립 음악 아카데미의 쳄발로와 음악학의 교수로 임명되고, 53년부터는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도 가르쳤다. 1955년에 암스테르담에 돌아와서부터는 이 음악원의 교수로 있으면서 시의 프랑스 개혁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고,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연주회를 열어 주목을 끌었다.

 

이 사이의 1969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객원 교수로서 초빙되어 미국에서도 지도에 임했고, 또 레온하르트 합주단을 조직하여 실내악 주자로서도 폭넓은 활동을 가졌으며, 프랑스 브뤼헨이나 안나 빌스마와 함께 호평을 얻었다. 그리하여 쳄발리스트, 오르가니스트, 지휘자로서 브뤼헨과 함께 네덜란드, 벨기에를 중심으로 한 옛 악기 연주의 추진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는 한편 음악학자로서도 스벨링크의 클라비어 작품이나 바흐의 《푸가의 기법》의 교정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다.

 

바흐를 중심으로 옛 음악의 진정한 연주를 추구해 가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탐구는 단순히 음악 작품의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당시의 문화, 생활 양식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그렇게 종합적으로 시대를 알고, 거기에 재창조된 그의 연주에는 항상 작품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확신이 넘쳐 있다. 그리고 그 엄격한 오리지널 주의에 의한 양식이나 주법에 대해서는 때로 고집이 강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깊은 학식과, 브뤼헨으로 하여금 ‘그는 바흐다’라고 말하게 한 풍부한 음악성에 뒷받침된 연주는 항상 작품을 여태까지의 연주에 없었던 새로운 빛 속에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재현한다. 쳄발로와 오르간 연주만이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현대의 옛 음악 연주가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한 사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주자이며 지휘자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에서 음악을 공부한 다음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스위스의 바젤 스콜라 칸토룸 바질리엔시스에게 배우고,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에드발트 뮐러에게 사사했다. 졸업 후에는 1952년에 약관 22세로 빈 국립음악 아카데미의 하프시코드과의 교수가 되었고 음악학도 강의를 하며 후진 육성에 임했다. 그러나 1955년에 모국의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연주가로서도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또한 암스테르담의 프랑스 개혁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또한 뷔르헨 등과 함께 고악기 연주의 추진자로서도 주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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