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Carlo Maria Giu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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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계의 신사’로 잘 알려진 줄리니는 1914년 이탈리아의 남부 항구도시 바를레타Barletta에서 태어났다. 그가 5세가 되던 해 가족은 이탈리아 북쪽 국경지역의 볼차노Bolzano로 이사했다. 볼차노는 한때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였던 곳으로 남부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문화가 남아있었다. 많은 음악 비평가가 줄리니의 품격 높은 독일음악 해석의 원류로 이러한 성장배경을 꼽고 있다. 알프스 이남에서 태어났지만 알프스 이북 예술의 본류를 어린 시절부터 문화와 공기로 체험한 셈이다.

  볼차노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던 줄리니는 로마로 가게 되어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비올라와 작곡을 공부했다. 1971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비올라 연주자였기에 음악의 내성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이올린보다 소리가 튀지 않고 묵묵하게 내성부를 책임지는 악기인 비올라를 다룬 경험이 그의 지휘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또한 그는 지휘자를 스타라기보다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음악가’로 생각했다. 전쟁 중에 사람을 대상으로 총 한 방 쏘지 않은 군인이었던 줄리니의 ‘인간애’도 특유의 기품 있는 음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시스트에 협력한 전력이 없는 음악가로 줄리니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1944년 다소 늦은 나이지만 비로소 정식 지휘자로 로마에서 데뷔하게 된 것이다. 곡목은 교향악 레퍼토리의 핵심이자 줄리니를 대표하는 곡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이었다. 로마 등지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던 줄리니는 이탈리아에서 명성 높은 지휘자로 떠올랐다. 1953년에는 심장마비를 겪은 빅토르 데 사바타Victor de Sabata의 뒤를 이어 마침내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직을 거머쥐게 된다. 1955년 마리아 칼라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주역을 맡았던 <라 트라비아타> 라 스칼라 녹음(EMI)은 그의 초기 디스코그래피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55년 줄리니는 시카고에서 미국 데뷔를 하여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를 역임했다. 음악 외적인 요소가 많고 정치력이 더욱 필요한 분야인 오페라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 그가 교향악에 주력하게 된 것은 필하모닉 애호가들에게 더없는 기쁨이었다. 197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가게 된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고 젊은 정명훈을 부지휘자로 발탁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탈리아인’으로 귀족적인 해석을 펼쳤던 줄리니는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돌연 음악감독직을 사임하고 이탈리아로 되돌아갔다. 만년에 교향악 녹음에 전념하던 줄리니는 결국 2005년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에서 91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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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44 로마에서 지휘자로 데뷔 로마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으로 지휘자 데뷔하였다. 당시 데뷔로는 다소 늦은 30세였다.
1953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빅토르 데 사바타의 뒤를 이어 라 스탈라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1978 로스 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고, 여기서 정명훈을 부지휘자로 발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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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티스트의 '줄리니' 에 대한 평가 (1)

  • 정명훈 이(가) '줄리니' 을 보고 줄리니의 지휘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밝힘 김문경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살림지식총서
    "[줄리니는] 음악에 대해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고 단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직접 음악의 핵심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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