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델 모나코 Mario del Mo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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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태생인 이탈리아의 드라마틱 테너 가수. 음악의 전문 교육을 페자로 음악원에서 받고, 아루트로 메로키에게 사사했다. 1941년에 밀라노의 푸치니 극장에서 《나비부인》으로 오페라계에 데뷔했고, 1943년에 스칼라 극장에 데뷔했다. 1946년에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 가극장. 1950년에는 센프란시스코 가극장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출연하여 세계 제일의 테너 가수로서의 실력을 입증했다. 이리하여 1950년대에는 세계적인 드라마틱 테너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모나코의 성질(聲質)은 매우 볼륨이 있어서 고음역에 이르러도 결고 가늘어지지 않는다. 그 발성법의 결점에 대해서는 가끔 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나, 종합적인 예술성의 높이는 만인이 인정하는 바가 있다. 이탈리아 및 프랑스 오페라의 리리코 스핀토, 드라마티코의 테너 롤의 거의 전부를 레퍼토리로 하고 있는데, 특히 베르디의 가창력이 뛰어났다. 《오텔로》의 타이틀 롤은 실로 일품이어서, 초연의 타마뇨, 대전 전을 대표하는 비나이, 그리고 델 모나코라는 계보는 이탈리아 오페라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다. 그 음악의 질과 관련해서 드라마틱한 강도가 세어지는 역일수록 뛰어난 가창을 들려 주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의 가극장에서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 《안드레아 세니에》, 《팔리아치》, 《페도라》 등의 오페라에서 절찬을 받았다. 흉팍에 부딪치는 듯이 솟아나오는 빛나는 목소리의 울림과 정열적인 표현, 델 모나코의 출현은 제 2차 대전 후의 오페라 융성의 한 요인을 이루고 있다. 그 트럼펫 보이스는 듣는 이를 압도하고, 그 피를 토하는 듯한 격정적인 가창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는 못배기게 한다. 그야말로 금세기 최대의 불세출의 대 테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1996.9.1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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