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타인 프라이스 Leontyne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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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보

  • 주요역할 연주 (Soprano)
  • 국가 United States of America
  • 성별 여성
  • 출생/결성 1927-02-10 Laurel, MS, USA

바이오그라피

  미시시피 주 로렐에서 태어난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흑인의 목수와 조산부를 양친으로 해서 태어났다. 처음에 교사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었으나,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글리 클럽에서 노래하고 있을 때 폴 로브슨에게 인정되어, 그의 천거로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951년에 파리에서 열린 20세기 음악제에 작곡자인 버질 톰슨의 추천으로 그의 《네 명의 성자》에 기용되었다. 같은 해 결성된 포기와 베스 가극단에 참가하여 베스를 부르고, 이윽고 상대역인 포기를 부르고 있던 윌리엄 워필드와 결혼했다. 가극단 해산 후인 1954년에 뉴욕의 타운홀에서 사무엘 바버의 작품을 작곡자 자신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하는 의욕적인 리사이틀로 주목을 모아. 1955년에 NBC 텔레비젼에서 방영하는 《토스카》에 발탁되어, 풀랑크의 《카르멜파 수녀의 대화》 샌프란시스코 공연에 작곡자의 추천으로 브랑슈 역을 부르고, 또 샌프란시스코에서 안토니에타 스텔라,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아니타 체르켓티의 대역으로 《아이다》를 불러서 성공을 거두었다. 1956년에 카네기 홀의 오디션에서 카라얀에게 인정되어, 1958년에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시즌 개막 첫날에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의 미니를 불러 프리마 돈나의 자리에 올라섰다. 지난 날 마리안 앤더슨이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출연한다는 것이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흑인 가수로서는 이례적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이것이 24년 전이라 해도 제2차 대전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도 유럽의 일류 가극장은 아직은 흑인 가수에 대해서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프라이스의 출현과 제왕 카라얀의 위력에 의해서 그 문도 열렸다. 그 이후의 흑인 가수의 대두는 눈부신 것이어서, 이제 볼쇼이에서도 흑인 가수들이 진귀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이름은 음악사에 남을 것이지만,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레코드 상으로도 알 수 있다. 프라이스가 대전 후에 있어서 칼라스나 테발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굴지의 대 프리마 돈나임은 사실이지만, 레코드로서는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성질에는 녹음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는데, 프라이스는 어쩐지 후자와 같이 생각된다. 그녀의 성량은 커서 무대에서 들었을 때는 홀 톤으로 호응하여 청중에게 압도적인 감명을 주기도 하나, 레코드에서는 여과되어 버려서 때로는 오프 스테이지에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완벽한 벨 칸토 창법의 가수와 공연하면, 그녀의 목소리는 뒤로 움츠러지는 듯이 느껴진다. 프라이스는 순수히는 리리코처럼 생각되는데, 스핀토나 드라마티코에도 충분한 성량과 음색적인 다채로움을 지녀, 이탈리아 가극뿐이 아니고, 프랑스 가극이나 모짜르트도 특기로 한다. 또 독일 리트나 종교 음악, 그리고 흑인 가수답게 재즈 보컬에서도 좋은 맛을 풍긴다.

(음악의 역사 (음악사 대도감),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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