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교향악단 Orchestre d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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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역할 연주단체 (Orchestra)
  • 국가 France
  • 출생/결성 1967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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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에 프랑수아-앙투안 아브네크가 파리 음악원 직속 악단으로 창단한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을 1967년애 해체하고 만든 악단으로, 공식적으로는 1967년을 창단 시점으로 잡고 있다.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은 베를리오즈, 생상과 세사르 프랑크를 비롯한 자국 혹은 프랑스계 작곡가들의 작품과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작품의 프랑스 초연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많이 남겼으며, 창단 때부터 교수와 졸업생 위주로 단원을 임용해 실력 편차를 최소화하는 방침을 계속 유지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중에도 제한적이나마 활동을 보장받았으며, 전후에도 계속 활발한 활동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여타 파리 소재 관현악단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었고, 상임 지휘자도 구하지 못한 채 객원 지휘에 의존하면서 연주력도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967년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악단을 해체하고 그 단원들로 새로운 체계의 조직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 작업에는 말로 외에도 마르셀 란도프스키 등 프랑스 음악계의 유력 인사들이 적극 관여했고, 그 해 11월 14일에 현재의 이름으로 정식 재창단 겸 첫 공연을 샤를 뮌슈의 지휘로 개최했다.

 

뮌슈는 동시에 초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고, 창단 후 1년 뒤 곧바로 해외 순회 공연에 들어갈 정도로 단기간에 수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뮌슈는 미국 순회 공연 중 급서했고, 후임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음악 고문 자격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활동을 우선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1971년에 사임했고, 게오르크 솔티가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솔티 역시 시카고 교향악단 음악 감독을 겸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1975년에 물러났다.

 

솔티의 후임으로는 30대의 젊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임명되었고, 바렌보임은 전임자들과 달리 이 악단과의 활동에 주력해 악단의 수준을 창단 당시로 복원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또 1976년에는 부속 합창단인 파리 관현악단 합창단(Chœur de l'Orchestre de Paris)도 조직했고, 직접 피아니스트를 맡아 단원들과의 실내악 활동도 시작했다.

 

바렌보임이 1989년에 바스티유 오페라단으로 옮겨가면서 후임으로 소련 출신의 세묜 비슈코프가 취임했으며, 비슈코프는 1998년까지 직책을 유지했다. 이어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음악 고문 자격으로 부임했고, 2년 뒤인 2000년에는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음악 감독직에 임명되어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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