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자발리슈 Wolfgang Sawall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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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자발리슈는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태생의 지휘자이다.

유년기부터 피아노, 음악 이론, 작곡을 잇따라 배웠다. 지휘도 현대음악의 지휘로 유명한 한스 로스바우트에게 사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통신병으로 징병되었고, 전후 1947년에 아우크스부르크 시립극장에서 훔퍼딩크 작곡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로 데뷔했다. 이 지휘가 높게 평가되어 제1 지휘자로 발탁된다. 이어 1949년에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바이올리니스트 게르하르트 자이츠와 공연,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의 이중주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가 된다. 이후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주로 리트 반주자)로서 병행하여 활동했다.

1953년에는 아헨, 1958년에 비스바덴, 1960년에 쾰른의 각 시립 오페라 음악총감독에 취임한다. 그동안 1957년에는 런던 데뷔(엘리자베크 슈바르츠코프의 반주자, 필하모니 관현악단 지휘)와 바이로이트 음악제 첫 출연을 완수한다. 33세에 바이로이트 출연은 당시 최연소 기록이었다.(1960년에 로린 마젤이 30세에 첫 출연하여 현재는 이것이 최연소 기록)

이러한 성공으로 카라얀은 자발리슈를 비엔나 국립 오페라, 다른 한편으로 루돌프 빙도 당시 지배인이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초빙하려했다. 그러나 자발리슈는 자신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자존심 강한 두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카라얀 시절에는 한번도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초대받지 못했고 평생 한 번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지휘하지 못했다.

오페라 극장에서의 활약과 더불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하고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했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창시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사후 오케스트라의 재구축에 진력했다. 1971년부터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음악감독 (1982년부터 1992년 음악총감독)에 취임했다. 젊은 인재 가수를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출연자의 상대적인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1988년에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든 오페라를 상연해 화제를 불렀다.

바이에른 포스트를 퇴임 후 리카르도 무티의 후임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다. 필라델피아의 포스트를 퇴임한 후에는 특정 포스트에 있지 않고, 프리 지휘자로 활동했지만, 2006년 3월, 5월 이후로 예정하고 있던 필라델피아와 로마 등에서 콘서트를 심장질환 악화를 이유로 취소하고 사실상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 2013년 2월 22일 바이에른 주 그라사우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토스카니니 배턴, 베를린 필에서 니키슈 메달, 빈 심포니에서 브루크너 메달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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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49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 제네바 국제 콩쿠르(Geneva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참가하여 1등 우승했다.
1954 베를린 필 첫 지휘 카라얀이 상임지휘자였던 1954년, 30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섰다.
1957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데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여 바이로이트 데뷔 했는데, 바이로이트 사상 최연소 지휘자였다.
1971 바이에른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총감독 취임
1972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의 음악감독으로 취임. 1980년까지 재임했다.
1993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취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hiladelphia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여 10년간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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