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än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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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1886년 고고학자이며 뮌헨 대학의 교수였던 아돌프 푸르트벵글러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전통 게르만 혈통을 물려받은 푸르트벵글러의 풍부한 교양은 훌륭한 학자나 예술가를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받은 어린 시절의 교육에 기인한다. 이는 당시 유복한 독일 집안의 전통이었다. 아버지는 고고학 여행 때 아들을 데리고 다녔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고대 로마와 고대 그리스 유적의 위대함을 현지에서 직접 체험 학습했다. 획일적인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힌 적인 없었던 그의 어린 시절은 다양한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며 너른 지평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한 준비기간이었다.

 

처음에는 작곡을 공부했던 푸르트벵글러는 1905년부터 브레슬라우, 뮌헨 등지에서 견습 지휘자로 경험을 쌓았다. 푸르트벵글러가 지휘대 위에 공식 데뷔한 것은 1906년 6월이었다. 당시 푸르트벵글러가 뮌헨 카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연주한 곡은 베토벤의 <헌당식 서곡>과 자작곡 교향곡 1번 중 아다지오, 메인 프로그램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이었다. 1911년에 뤼벡 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된 푸르트벵글러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1915년 만하임 오페라극장 지휘자로 인정받고 1920년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36세이던 1922년 지휘자 아르투어 니키쉬에게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물려받았다.

 

푸르트벵글러의 명성은 40대가 되기 전에 세계에 알려졌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뉴욕 필에 초청돼서 미국에서 활동했고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빈 필 겸 빈 국립오페라 상임 지휘자에 임명됐다. 거기에다 바이로이트 음악제 총감독까지 석권한 푸르트벵글러는 명실공히 음악계의 ‘황제’로 등극한다.

 

이후 나치 통치 하의 독일에서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의 부당한 예술 간섭에 맞섰고 유태계 음악가들의 도피를 도왔다. 유태인 음악가 힌데미트가 나치 문화행정 담당자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당했을 때 푸르트벵글러가 이에 반대해 힌데미트를 옹호한 이른바 ‘힌데미트 사건’은 유명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에 협조한 혐의로 전범으로 몰려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1947년 무죄 판결로 복권되어 다시 베를린 필의 무대로 돌아왔다. 1952년 바이로이트 부활 연주회를 지휘했고 같은 해 베를린 필 종신 지휘자가 됐지만 1954년 사망과 함께 음악계 제왕의 대권은 카라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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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06-02-19 뮌헨에서 지휘자로 데뷔 뮌헨의 카임 오케스트라(지금의 뮌헨 필하모닉)에서 지휘자로 데뷔 (베토벤 <헌당식> 서곡, 브루크너 교향곡 9번)
1922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됨 아르투로 니키슈(Arthur Nikisch)의 후임으로 두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34 '힌데미트 사건'으로 공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남. 나치 정권이 금기시하던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를 연주하고, 힌데미트를 옹호하는 신문 기고문을 발표하여 공직에서 물러났다. 머지않아 나치 정권은 그를 지휘자로 복귀시켜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한다.
1945 종전 후 나치 부역혐의로 체포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부역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47 무죄판결을 받아 지휘계에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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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티스트의 '푸르트벵글러' 에 대한 평가 (2)

  • 슈바르츠코프 이(가) '푸르트벵글러' 을 보고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동작에 대해 언급 김문경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살림지식총서
    "그(푸르트벵글러)의 동작은 눈에 보이는 음악의 물결이었다."
  • 브렌델 이(가) '푸르트벵글러' 을 보고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음악에 대한 찬사 WIkiquote
    "With Fischer, one was in more immediate contact with the music: there was no curtain before the soul when he communicated with the audience. One other musician, Furtwangler, conveyed to the same degree this sensation of music not being played, but rather happening by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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