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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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보

바이오그라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지금은 오스트리아이지만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대주교의 관할 구역이었던 잘츠부르크에서 궁정 음악가인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형제로는 누나인 나넬 모차르트가 있었다. 모차르트는 태어난 다음 날 로마 가톨릭교회인 성 루퍼트 대성당에서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활동한 교부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대주교에서 따왔으며, '테오필루스'는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이름으로,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에 아마데우스(라틴어: Amadeus), 고틀리브(독일어: Gottlieb), 아마데(프랑스어: Amade)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는 출판업자인 요한 야콥 로테르에게 모차르트의 출생을 알리는 편지에서 "...아이의 이름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 고틀리브요."라는 글을 남겼다. 볼프강은 세 번째 이름을 좋아했고 또한 "아마데우스"라는 이름도 좋아했다.

 

어렸을 적의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교육자 중 한 사람으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다. 레오폴트는 볼프강의 누나를 어려서부터 가르쳤고, 이를 볼프강은 지켜보았다. 세 살 때부터 볼프강은 누나를 보고 건반을 다루고 연주하는 법을 터득했다. 레오폴트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뚜렷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작곡을 그만두었고 볼프강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매우 뛰어났다. 난네를의 뮤직북에 쓰여진 레오폴트의 기록에 따르면 어린 볼프강은 네 살 때 여러 곡을 배웠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능력은 빠르게 발달하여, 다섯살 때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믿지 못하여 일부러 모차르트의 집에 찾아와서 모차르트를 시험해 보았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모차르트의 곡을 써주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보였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모차르트를 믿기 시작하였다.

 

여행

레오폴트는 어린 볼프강을 데리고 연주를 다녔다. 볼프강은 눈을 가리거나 손을 뒤로 해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그가 본 적이 없었던 어려운 악절을 갖고 즉흥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한번은 볼프강에게 병이 난 적이 있었는데, 레오폴트는 아들의 몸보다는 수입이 줄어들 것을 더 걱정했다.

 

피아노를 치는 청년기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1762년에 뮌헨을 시작으로 3년 반 동안 아버지를 따라 빈, 다시 뮌헨, 만하임, 파리, 런던, 헤이그, 다시 파리, 취리히, 잘츠부르크, 도나우에슁겐(Donaueschingen), 뮌헨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모차르트 일행은 1767년 말에 빈으로 가서 1768년 12월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잘츠부르크에서 1년 동안 지낸 다음 이탈리아로, 1769년 12월에서 1771년 3월까지, 1771년 8월에서 12월까지, 1772년 10월에서 1773년 3월까지, 세 차례 갔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한 번 듣고 기억만으로 전부 써내려갔다. 이 미제레레라는 곡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중요시하는 곡으로써 그 악보조차도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귀중한 악보였는데 모차르트는 단지 듣는 것 만으로도 모두 악보의 음색을 기억해 그려낸 것이다. 그는 또한 요제프 하이든을 만나 하이든의 작품에서 교향곡·협주곡·피아노곡 등 기악곡을 배웠으며, 만하임에서 만하임 악파의 악기법을 익혔다.

 

1777년에는 어머니와 함께 뮌헨, 만하임, 파리로 갔는데, 파리에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모차르트는 많은 음악가들과 만났는데, 그중에서 1764-5년에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바흐로부터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법을 배웠으며 이러한 토대로 모차르트는 사후까지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기는 중요한 계기가된다.

 

베토벤과의 만남

또한 모차르트는 빈에서 생활하던 1784년 베토벤과도 만났다. 그는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베토벤을 반갑게 맞이하였는데 이 때 베토벤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자신이 만든 즉흥곡으로 하여금 또다른 작품으로 휼륭히 소화해내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교육비를 일절 거절하고 베토벤을 교육시키는데 전념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어머니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모차르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빈을 갑작스럽게 떠났다. 만난 지 불과 1달만의 일로 이것이 두 거장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베토벤이 다시 빈에 찾아온 건 1792년으로 그때는 모차르트가 죽은지 1년이 지난 뒤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전거는 오토 얀이 저술한 모차르트의 전기가 유일하다. 따라서 오늘날은 그 신뢰성이 부인되고 있다. 다만, 베토벤이 제자인 리스에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에 대하여 논평한 것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만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죽음

모차르트의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설을 비롯하여 학설이 많다. 낭만적인 주장으로는 모차르트의 건강이 점점 약해지면서 그의 모습과 작품 역시 다가오는 죽음과 함께 쇠퇴하였다는 것이 있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가 그에게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충격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의 죽음이 급작스러웠다고 주장한다.

 

그의 죽음의 원인 또한 추측이 무성하다. 기록에는 그가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hitziges Frieselfieber")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인에 대한 학설 중에는 선모충병, 중독, 류머티스열, 덜 익힌 돼지고기에 의한 식중독 등이 있다. 환자의 피를 뽑았던 당시의 의술도 모차르트의 죽음을 앞당기는 데에 기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오전 0시 55분경에 죽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작품 레퀴엠의 완성을 여러 제자들에게 맡겼으나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가 완성시켰다.

 

모차르트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와 달리, 그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수입이 있었고 프라하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꾸준한 작곡 의뢰를 받았다. 그가 말년에 전성기 때만큼의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으며 돈을 꿔 달라고 쓴 편지가 있지만, 이는 그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번 돈보다 더 많이 썼기 때문이있다. 그 실례로 모차르트가 입은 옷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이었다. 모차르트는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다. New Groove에 따르면 그가 여러 사람과 함께 묻힌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당시 빈 중산층의 장례 풍습대로였다. 그것은 잘 정비된 묘지였으며 나무로 된 것이었으나 묘비도 있었다. 묘비가 나무였던 것 또한 당시 빈 중산층의 장례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 당시 빈에서는 화려한 장례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장례식 날 비가 오고 천둥이 쳤다고 하나 New Groove에 따르면 사실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이었다고 한다. 현재 모차르트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은 성 마르크스 묘지가 더 많은 묘지를 수용하기 위해 이장을 거듭하였기 때문이지 아무렇게나 묻었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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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760 피아노를 배움 아버지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시작함.
1761 처음으로 작곡을 함.
1769 잘츠부르크 궁정 악단 무급 콘서트 마스터에 임명
1772 잘츠부르크 궁정 악단의 유급 콘서트 마스터에 임명됨.
1778 어머니의 죽음
1779 잘츠부르크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됨.
1782 결혼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함.
1784 프리메이슨에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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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나 작품에 대한 언급 (1)

  • '모차르트' 이(가) Johann Sebastian Bach 에 관해 라이프치히에서 바흐의 모테트를 듣고 높이 평가함 (1789) 모차르트 평전
    1789년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를 방문하여 그 곳에서 바흐의 모테트를 듣고 "놀랍다. 모처럼 배울만한 곡을 들었다."고 말하고 악보를 가지고 가서 탐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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