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크리스토프 Boris Christ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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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의 베이스 가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베이스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의 아들로 소피아에서 태어났다. 크리스토프는 일찍부터 가창의 재능을 보여, 소년 시절에 소피아의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의 합창단에 합류했다. 1930년대에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일단 사법 관계의 직장에서 일했지만 여가 시간에는 소피아 구스라 합창단에서 노래를 계속하고 1940년에는 동 합창단의 솔로이스트로서 성공을 거둔다. 정부의 허가를 얻어 1942년에 출국해 로마에서 유명한 바리톤 리카르도 스트라차리(Riccardo Stracciari)에게 사사, 2년간 이탈리아 오페라의 베이스 레퍼토리를 배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크리스토프는 오스트리아에 피난 해, 이곳에서 오페라 출연과 공연 등을 실시했지만, 종전 직전의 혼란에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석방된 1945년 연말에 로마로 귀환, 다시 스트라차리의 아래에서 연구를 쌓는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무대 데뷔는 1946년, 푸치니 <라 보엠>의 콜리네 역으로 했다. 곧 국제적인 활약을 시작하고 1947년부터는 밀라노 스칼라, 1949년부터 런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및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출연하는 등 유럽 및 남미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맹활약했다.

1950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초대되었지만, 소련의 세력하에 있는 국가에서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당시 미국법에 의해 입국이 거절된다. 입국 제한이 완화된 후 1956년에 크리스토프는 드디어 미국에서 데뷔(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또한 시카고 오페라에서도 자주 불렀는데, 메트에서 초청은 평생 계속 거부되었다.

1964년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이듬해에는 활동에 복귀하지만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게 되었다. 1967년에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1945년 이후 처음으로 고국 불가리아에 입국이 허용되었다. 그 후에도 종종 인상적인 무대를 맡아 공식적인 은퇴는 1986년 6월 22일 로마의 성 체칠리아 음악원에서의 리사이틀. 1993 년에 로마에서 사망한 후 유해는 소피아에 옮겨져 알렉산더 넵스키 성당에서 국장급으로 장계식이 엄수되었다.

큰 성량, 인상적인 음색과 무대 매너, 그리고 강력한 극적 표현에 뛰어난 크리스토프는 샬랴핀 같은 위대한 슬라브계 베이스 가수의 계보에 늘어서는 정당한 후계자로 간주되었다. 오페라의 레퍼토리는 러시아 오페라와 베르디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가곡에서도 정교한 표현을 들려주었다. 대표적인 역할로는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이반 뇌제>, 보로딘의 <이고리 공>의 각 타이틀 롤, 베르디 <돈 카를로>의 필리포 2세 역을 들 수 있다.

무대 위에서는 위대한 가수였던 크리스토프이지만, 동료 가수와 지휘자, 연출가 사이의 인간 관계에 문제가 많았다. 1955년에는 로마에서 케루비니의 <메데아>공연 중 마리아 칼라스와 충돌, 또한 1961년에는 같은 불가리아 출신의 젊은 베이스 니콜라이 갸우로프에게 공산당 정권에 추종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크리스토프가 스칼라 계약을 중단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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