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 뵤를링 Jussi Björ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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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의 테너 가수. 독특한 품격과 맑은 투명감을 갖춘 미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테너 가수를 아버지로 태어나 아버지를 처음 스승으로 음악 교육을 받는다. 6살 때 아버지, 그리고 2명의 형들과 함께 '뵤를링 남성사중창단'을 결성해 보이 소프라노로 연주 활동을 전개, 미국에서도 연주 여행을 하였다. 첫 녹음은 8살 때 가졌다. 1928년 스톡홀름 왕립 음악원에 입학, 1930년 이곳의 왕립 극장에서 정식 데뷔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 역). 이 극장 소속의 시대에 다시 활발한 녹음 활동을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여 간다.

1936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 또한 193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로돌포(푸치니 <라 보엠>)를 불러 데뷔. 국제 명성을 확고히 한 후 구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메트과의 관계는 깊고, 1959년까지 메트의 간판 테너로 활약했다.

녹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LP 레코드 (1948년 발매)가 보급기에 들어가면서 장시간 녹음이 가능한 LP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또 레코드 회사에서 오페라 전곡 녹음이 본격화, 뵤를링은 메트에서 활약하는 가수들을 기용해 오페라 녹음에 나섰던 RCA 빅터에 초대되어 1952년의 <일 트로바토레>를 시작으로 많은 전곡 녹음에 참여하고 있다.

레퍼토리는 베르디, 푸치니의 작품, 그리고 부드러운 미성으로 구노의 <파우스트> 등 프랑스 오페라에도 일가견을 보여 주었다. 또한 카니오(레온카발로 <팔리아치>)나 투리두(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 베리스모 오페라도 레퍼토리이며, 경쾌한 리리코계 여러 역에서 중후한 스핀토계 여러 역까지 유연하게 노래한 명테너였다.

1960년 3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 직전에 심장 발작으로 쓰러졌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심장 비대 상태면서 녹음에 참여하는 등 재기에 노력하고 있었지만, 같은 해 9월, 심근경색으로 향년 49세를 일기로 스톡홀름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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