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 로리오 Yvonne Lo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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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메시앙의 두 번째 아내. 은사이고 후에 남편이 된 메시앙의 작품을 중심으로 현대 음악의 전문가로 국제적으로 유명하고, 수많은 레코드가 있다. 결혼 후에도 옛 그대로 이본 로리오로 활동했지만, 메시앙의 사후에 "로리오-메시앙 (Yvonne Loriod-Messiaen)"의 이중 성을 이용하게 되었다. 여동생 쟌느 로리오은 옹드 마르트노 연주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암보로 연주해내 신동으로 장래가 촉망되고 파리 음악원에 진학하여 다리위스 미요 등에게 사사. 1943년에 음악원의 초견 연주 과제곡으로 메시앙이 작곡한 "론도"에 의해, 장-미셸 다마즈과 함께 수석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메시앙은 그 연주 능력을 주목되게 되어, 피아노를 위한 <아멘의 환영>의 초연자로, 메시앙에 의해 공연 상대로 선정되다. 이 밖에도 1940년대에 작곡 된 메시앙의 피아노곡은 모두 로리오에 의해 초연되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메시앙의 피아노 서법은 로리오의 초절 기교에 촉발되어 새로운 전개를 이루고 있어 이후 수많은 관현악곡이나 성악곡의 피아노 파트에 로리오의 영향력의 크기를 인정할 수 있다.

메시앙이 나치 독일 군대의 포로로 강제 수용소 에서 만난 기 베르나르 들라피에르 (Guy Bernard-Delapierre)로부터 1943년부터 1947년까지 자택이 개방되어 음악학원을 열면서 로리오도 작곡과 악곡 분석을 공부한다. 덧붙여서 여기에서 음악 서클 「레 프레시 (Les flèches, 화살)」가 발족하고, 피에르 불레즈와 세르주 니구, 장 루이 마르티네즈, 모리스 르 루 등과 함께 그 동인으로 활동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1959년에 메시앙의 전처 클레르 데르보스가 타계하면서 1961년 이후 새소리의 수집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전처 데르보스와 달리 메시앙 사이에 아이는 없다.

2010년 5월 17일에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주가로는 쇤베르크와 버르토크, 졸리베 등의 현대음악, 특히 메시앙 작품의 전문가로 명성이 눈에 띄며 이 밖에도 바흐와 모차르트, 쇼팽에도 조예가 깊고, 드뷔시와 라벨의 피아노곡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만년에도 세계적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계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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