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프라이 Hermann 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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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바리톤 가수이다.

프라이는 베를린에서 태어나 나치 독일 시대의 독일에서 성장, 징병되기 직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했다.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배우고, 195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헤센 방송 협회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그는 가곡 리사이틀에서 노래를 시작, 이듬해 비스바덴에서 오페라의 첫 무대를 밟는다. 이후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에 참가하고 1960년까지 그곳에서 노래했다. 함부르크 시대의 마지막 몇 년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비롯한 각지에서 종종 객원했다.

1960년에 <탄호이저>의 볼프람를 불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 한 뒤 1970년 무렵까지 자주 출연하고 1965년 같은 역으로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데뷔했다. 초기에는 베르디도 노래할 수 있었지만, 후에 모차르트와 R.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프라이는 오페레타도 잘 부르고, TV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에 텔레비전 시청자에서 매우 인기를 얻었다. 독일 민요와 학생 노래도 즐겨 노래하며 녹음도 남기고있어 그 점에서도 역시 밝은 캐릭터로 사랑 받고 있는 에리히 쿤츠의 후계자인 측면도 가진다.

자신있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피가로와 백작의 모두 노래), <마술 피리>(파파게노), <코지 판 투테>(굴리엘모), <세비야의 이발사>(피가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베크메서), <박쥐>(아이젠슈타인) 등 부포 계열의 역으로 천의무봉의 가창을 들려준다. 특히 로시니 독일인 가수에는 특별한 두 피가로에 모두 성과를 거둔 몇 안되는 가수가 되었다.

프라이 레퍼토리의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던 것은 스스로 "내 인생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듯이 슈베르트이며, 슈베르트를 비롯한 독일 가곡은 매우 높게 평가 되었다. 때때로 음정이 불​​안정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그것을 보충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필립스 레코드에 미네젱거 가곡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가곡의 역사를 더듬은 '독일 가곡 대전집'의 레코드 녹음을 실시하는 등, 5세 연상 동향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항상 비교당하면서도 이 역사적인 대가수에 이어 체계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 밖에도 그는 수많은 오페라와 가곡 음반 녹음을 했다.

다른 보컬을 포함 연주회, 특히 바흐의 수난곡과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도 자주 출연했다.

1982년부터 그는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후진 양성을 하고 자서전을 썼다. 또한 1976년 오스트리아의 호에네무스에서 슈베르티아데 음악 축제를 주최, 스스로 노래와 함께 뛰어난 연주가를 초청하여 매년 많은 연주회를 기획했다. 198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연출을 했다.

1998년 바이에른 주 크라링링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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