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대표이미지

아티스트 사진

기타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 아티스트 이미지들

아티스트 정보

바이오그라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약 400킬로 되는 칠랸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3세 때 베토벤의 소나타를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암보로 연주했다고 하며, 5세로 최초의 리사이틀을 열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재능을 인정한 칠레 정부의 원조로 1911년에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옮겨, 베를린에서 시테른 음악원의 교수 마르틴 크라우제에게 사사했다. 리스트의 제자였던 이 명 교사 밑에서 아라우는 크라우제가 사망한 1918년까지 배웠으나, 이미 배우던 중의 11세인 1914년에 베를린에서 정식으로 데뷔를 장식하여, 순식간에 독일 국내에서 그 명성을 높여, 2년 연속해서 리스트 상을 받는 등 각족의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니키시 무크, 멩겔베르크, 프르트벵글러 등의 대지휘자들에게 인정되어 자주 협연했다.

 

그리고 크라우제가 죽은 뒤는 다른 교사에게 사사하지 않고, 1921년부터는 조국 칠레를 비롯하여 남미 각지, 영국, 북미, 또 빈에서도 연주하여 10대에 벌써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25년에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시테른 음악원의 교수로 취임하고, 27년에는 제네바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제 2 차 대전중에 유럽을 떠나서 미국으로 활동의 본거지를 옮겨, 지금도 뉴욕에 살고 있는데, 대전 후는 다시 유럽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여 남미 출신이면서도 독일 음악의 전통을 가장 정통적으로 이어 받은 거장으로서 극히 높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칠레정부는 특별한 외교관 여권을 주고, 수도인 산티아고에 '아라우 거리'를 만드는 등 인간 국보적인 영예를 주고 있다.

 

현재 아라우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현대 최고의 거장으로서 놀라울이만큼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다. 독일 음악의 가장 정통적 계승자로서 인정되고 있는 그는, 현대 최고의 베토벤 연주가이며, 쇼팽, 슈만, 리스트, 브람스라는 독일 낭만파 음악에 있어서 항상 최고의 평가와 전경을 모으고 있다. 특히 뛰어난 터치와 심이 굵은 아름다운 음, 항상 안정되고 확고한 스케일이 큰 음악성은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없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관련 사이트


주요 아티스트로 참여한 앨범 (15)


앨범 모두 보기   연주별 상세 모두보기

관련 사건 / 이벤트 (2)

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27 제네바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1987 내한 공연 (21일 협연, 23일 독주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한하여 5월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KBS 교향악단(지휘 원경수)과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하고, 5월 23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는 리스트 <순례의 해> 등을 연주했다.

이 아티스트에 대한 생각 (0)

댓글을 갖고 오는 중입니다.